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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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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일본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봤다. 4명의 이복 자매가 함께 모여 사는 얘기다. 우리로 치자면 이만한 ‘막장’ 소재가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머리 끄덩이 잡고 싸울 게다. 어쩌면 막판 숨겨진 쌍둥이 동생이 느닷없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근데 이 일본 영화, 싸우지 않으며 출생의 비밀도 없다. 특별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복 자매간 동거의 불편함과 낯섦을 아예 외면하지도 않는다. 다만 과장하지 않고 담담히 그려낸다. 문득 ‘이게 진짜 우리 삶 같다’란 생각이 들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괴물의 아이’, 10년 만에 재개봉한 ‘이터널 선샤인’ 등도 비슷하다. 자아의 성장이나 아픔 등에 천착한다. 일상을 차분히 담아내는 카메라를 통해 관객은 자연스레 자신을 돌아본다. 반면 국내 영화는 영 딴판이다. 시선은 온통 안이 아닌 밖을 향해 있다. 기획 단계부터 ‘가진 자’의 타락성을 폭로하고자 작정했던 ‘베테랑’이나 ‘내부자들’은 그렇다 치자. 신입사원의 좌충우돌을 그리지 않을까 예상했던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는 연예 권력의 횡포에 초점을 맞추고, ‘특종, 량첸살인기’는 미디어의 허상을 신랄하게 파헤친다. 심지어 로맨틱 코미디인 ‘극적인 하룻밤’마저도 정작 설파하고자 했던 건 N포 세대의 절규다. 한결같이 시대상을 담는다며 사회적 메시지로 가득하다. 이쯤 하면 가공인지 사실인지, 영화인지 시사(時事)인지 헷갈릴 정도다.

 한때 그랬다. 침묵하는 건 부당한 권력에 대한 암묵적 동의이거나 방조였다. 엄혹한 시대, 맞서 싸우진 못할지언정 취향 운운하는 건 사치였다. 그때는 사회적 목소리에 다들 목말라했다. 용기 있는 발언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예술이요, 감동이었다.

그런 권위주의 시대의 반작용일까. 영화가 아무리 시대의 거울이라고 해도 최근 경향은 과하다. 개인의 불행은 무조건 사회구조적 모순에서 기인하며, 비리의 배후엔 반드시 재벌·정치인·검사, 아니면 기자가 도사리고 있다. 주변에 일어날 법한 소소한 일상을 포착한 영화는 눈을 씻고 쳐다봐도 없고, 다들 권력·암투·부패 등을 들쑤시고 응징하느라 바쁘다. 누군가는 이를 “정의에 갈급한 한국 사회를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정의로 포장한, 변형된 상업주의”일 뿐이다.

 정치가 중요한들 안철수 탈당으로 나의 산책길 코스가 달라지진 않는다. 노동 3 법이 통과됐다고 당장 점심 메뉴가 나아지진 않는다. 정치·경제·사회가 덜 중요하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모든 개인의 일상사를 무조건 시대적 아픔과 연결 짓고, 거대한 음모의 일환으로 바라보는 것 또한 억지요 비약이란 얘기다. 권력형 비리를 덮기 위해 연예인 스캔들을 척척 터뜨릴 만큼 세상은 치밀하지 않다. 바깥 세상에 쏠린 과도한 시선을 이젠 조금 덜어내야 한다.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행여 놓친 건 없는지 살필 때다.

최민우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