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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 릴레이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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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꽃이란 걸 잊어버린 소녀가 있었다. 피기도 전에 짓밟혔으므로 소녀는 제 안의 꽃망울을 몰랐다. 그때가 열여섯 살쯤 됐을까. 짝사랑도 고백해 보지 못한 소녀였다. 소녀의 조국인 조선은 1910년 이후 일본의 식민지였다. 1932년 일본은 중국 상하이에 ‘위안소’를 설치했다. 일본군의 성노예 역할을 하는 ‘위안부’가 그곳에 있었다. 일본은 식민지의 소녀들을 위안부로 강제 동원했다. 소녀도 “배불리 먹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위안부로 끌려갔다.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을 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학자들은 소녀처럼 위안부로 끌려온 여성들이 최소 8만 명에서 2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이 조선인이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위안소도 폐쇄됐다. 위안소에 끌려갔던 조선의 소녀는 대한민국의 여인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위안부로 끌려갔던 고통의 기억은 숨겨야 했다. 그로부터 수십 년간 대한민국에서 ‘위안부’라는 이름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소녀가 할머니로 늙어 가는 동안 위안부 문제도 조금씩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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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정강현(팀장)·유성운·채윤경·한영익·김선미·윤정민·김민관 기자, 사진·영상=정혁준 기자, 김상호·김세희 VJ fon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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