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南通新이 담은 사람들] 소년원 독서지도 봉사하는 고승열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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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江南通新이 담은 사람들’에 등장하는 인물에게는 江南通新 로고를 새긴 예쁜 빨간색 에코백을 드립니다. 지면에 등장하고 싶은 독자는 gangnam@joongang.co.kr로 연락주십시오.

“다시는 보지 말자” 인사하는 선생님 

고승열(46·경기도 안양)씨는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고봉중·고등학교(서울 소년원)를 찾는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독서치료를 하기 위해서다. 한 달 두 달 이어진 게 올해로 10년째가 됐다.

 원래 그는 봉사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결혼 후엔 세 아이를 낳아 키우기 바빴다. 아무런 보상도 없이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을 쓴다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독서 봉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05년부터 한우리독서토론논술 독서지도사로 활동하면서다. “독서가 아이들의 사고력·창의력을 키울 뿐 아니라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한다는 얘기가 인상 깊었어요. 봉사단에 들어가 소년원 아이들에게 독서지도를 해 보기로 마음먹었죠.”

 처음 고봉중·고를 찾은 날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겨울 추위가 한풀 꺾이고 봄이 시작된다는 3월이었는데도 학교 안은 을씨년스러웠다. “실내인데도 바깥보다 온도가 낮은 느낌이었어요. 철창으로 된 문을 지나 아이들이 있는 교실로 향하는데,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컸어요.” 교실에 들어선 후엔 ‘과연 저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걱정을 먼저 했다.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아이들의 눈빛은 타인에 대한 경계심으로 가득했다.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아이들과 소통하는 비결은 꾸준한 관심과 애정 외에는 없었다. “한창 사랑받아야 할 나이에 너무 험난한 일을 겪은 아이들이잖아요. 사회적 기준으로 봤을 때는 잘못했을지 몰라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책은 아이들과 대화를 이어가게 돕는 훌륭한 매개체였다. 독서지도는 한 달에 한 번씩 지정해준 책을 읽어온 아이들과 느낀 점이나 주인공의 행동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식으로 이뤄졌는데, 말 한마디 없던 학생도 책에 대한 얘기를 할 때는 쉽게 입을 열었다. “소년원에 있어서 책과 담을 쌓았을 거라고 선입견을 갖기 쉽지만 의외로 독서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로드리고 무뇨스 아비아의 『완벽한 가족』으로 수업을 했을 때는 아이들의 속 얘기를 조금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자신의 가족에 대한 얘기를 술술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고씨는 진로지도에도 힘쓴다. 자신이 잘하는 일을 찾아줌으로써 사회의 일원으로 다시 적응할 수 있게 돕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마음먹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거다.

 소년원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아이들을 봤을 때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급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요즘에는 퇴원하는 아이들과 ‘다시는 보지 말자’고 인사를 주고받아요. 소년원에 발을 들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죠. 저와 함께한 시간이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 도움이 될 거라 기대합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속담처럼 말이죠.”

만난 사람=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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