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완장은 일제 흔적 … YS 유족에게 허락받고 없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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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 원장은 최규하·노무현·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의 장례를 진행한 ‘대통령 염장이’다. [중앙포토]

지난달 22일 서거한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같은 달 26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될 때까지 누구보다 바쁜 사람이 있었다. 지난달 23일 유족과 지인 40여 명이 비공개로 치른 입관식에서도 그는 빠지지 않았다. 유재철(56) 대한민국장례문화원 원장이 바로 그다.

유재철 대한민국장례문화원장
전직 대통령 4명 장례 모두 맡아
“중앙일보 기사 보여주니 수긍해”
한국만 있는 운구병 마스크도 없애

 그는 YS의 국가장 전 과정을 진행했다. 2006년 10월 최규하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같은 해 8월 김대중(DJ) 전 대통령에 이어 네 번째로 전직 대통령의 장례를 맡았다. 유씨는 “관 속의 YS는 아주 평온한 모습이었다”고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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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완장을 찼다(左), YS의 차남 김현철씨는 나비 모양의 상장을 달았다(右). [중앙포토]

 유 원장이 ‘대통령 전문 염장이’로 나선 계기는 2005년 동국대 대학원 장례문화학과에서 단체장(葬)을 주제로 한 석사논문을 쓸 때 박정희·윤보선 전 대통령의 장례절차에 관한 자료를 모으면서다. 이듬해 최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논문자료 때문에 알게 된 행정자치부 공무원을 통해 장례절차를 책임지게 됐다. 그는 “당시 전직 대통령의 장례는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국장이 가장 최근인 상황이었다(90년 윤보선 전 대통령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렀다)”며 “그러다 보니 최 전 대통령 국민장을 위해 역대 대통령·총리의 장례 자료를 공부해야만 했다”고 말했다(정부는 2011년 국장과 국민장을 국가장으로 통합했다).

 특이하게도 YS의 장례에선 김현철씨를 비롯한 상주들이 왼팔에 완장을 차지 않았다. 대신 나비 모양의 상장(喪章)을 왼쪽 가슴에 달았다. YS 유족은 당초 완장을 준비하려 했지만 유 원장의 조언을 듣고 그만뒀다고 한다. 그는 "완장이 전통이라고들 알고 있는데, 이는 일제 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항일집회를 막기 위해 들여 온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상주 완장은 일제의 흔적’이라는 내용의 중앙일보 기사(4월 4일자 토요판 11면)를 유족에게 보여줬다. 유 원장은 “최 전 대통령 국민장에선 워낙 정신이 없어 못 챙겼고, DJ와 노 전 대통령 때도 완장을 없애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이번에 YS 유족 측이 흔쾌히 받아들여 고마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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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 장례 때 흰 마스크를 쓰고 운구하는 의장대(左), YS 운구병은 마스크를 안 썼다(右). [중앙포토]

 완장 말고 YS의 국가장이 이전 전직 대통령 장례와 다른 점이 또 있다. 군 의장대가 처음으로 흰색 마스크를 쓰지 않고 관을 운구했다. 그는 “6·25 전쟁 후 운구는 마스크를 쓰고 하는 것으로 굳어졌다. 전 세계서 한국에서만 보이는 의례”라며 “‘관례대로 하자’는 YS 유족에게 ‘CNN 등 해외언론이 영결식을 보도할 텐데 흰 마스크가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유 원장은 “국가장 제도가 잘 갖춰져 있지만 이처럼 세부적인 내용은 좀 더 손봐야한다. 그 작업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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