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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걸린 거제 생가 … “와 그리 빨리 갔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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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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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이 1969년부터 거주했던 서울 상도동 자택 인근 주민들은 22일 조기를 내걸었다. 전국 지자체는 23일부터 분향소를 설치해 조문을 받을 예정이다. [송봉근·강정현 기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진 22일 오전 빌라와 연립주택들이 들어선 서울 동작구 상도동 골목엔 집집마다 조기가 게양돼 있었다. 이웃 주민들이 추모의 뜻으로 내건 것이다.

상도동 자택 골목 집집마다 조기
단골 칼국수집 “식성 좋은 분” 추억
SNS에선 “민주화 거목 쓰러졌다”

 김 전 대통령 자택 앞은 아침 일찍부터 애도를 표하는 주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자택 맞은편 빌라에 살고 있는 박상규(65)씨는 조기를 내걸며 “이틀 전 새벽부터 까마귀 10여 마리가 전신주 위에서 울어대길래 기분이 이상했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고 안타까워했다. 주민 김창배(55)씨는 “과(過)도 있었지만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큰 획을 그은 공도 많은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도동 자택은 1969년 이사 온 뒤 김 전 대통령이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무대가 됐다. 69년 당시 괴한들에게 ‘초산 테러’ 습격을 받은 곳도, 80년 가택연금을 당한 곳도, 83년 민주화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에 돌입한 곳도 이곳이었다. 이날 어린 딸과 함께 김 전 대통령 자택을 찾은 윤모(37·여)씨는 “한국 역사에 뜻깊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어린 딸과 함께 나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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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김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거제시 외포리 생가 인근 대통령기록전시관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송봉근·강정현 기자]

 ‘민주주의(民主主義)’ ‘대도무문(大道無門)’. 이날 경남 거제시 장목면 대계마을 김 전 대통령 생가의 본채에는 이 같은 글귀가 적힌 액자가 걸려 있었다. 그를 따라다녔던 상징적인 수식어들이다.

 1893년 지어진 생가는 김 전 대통령이 13세 때까지 성장한 곳이다. 내부에는 그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통령 재임 당시 모습 등이 담긴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마당에는 그의 흉상과 그가 직접 글씨를 쓴 현판·액자들이 곳곳에 있었다.

 이 마을에서 50여 년간 살아온 정영자(76·여)씨는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온 동네 사람이 이곳(생가)에 모여 꽹과리 치고 춤을 추며 기뻐 안 했나.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돌아가셨다니 착잡하제”라고 말했다. 인근 대금마을에 사는 권재선(80·여)씨도 “거제의 자랑이었제. 아까운 사람이 와 그리 빨리 갔노”라며 아쉬워했다.

 김 전 대통령과 남다른 인연을 가진 인사들도 고인을 추억하며 슬픔에 잠겼다. 칼국수 매니어였던 그의 단골집인 서울 성북동 ‘국시집’ 이수자(64) 사장은 “대통령으로 계실 때 매주 일요일 예배 후 가족과 함께 찾았고, 2013년 뇌졸중으로 쓰러지시기 전까지도 두 달에 한 번씩 오셨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식성이 좋아 뭐든지 잘 드셨다. 수육을 내면 한 접시를 어찌나 빨리 먹는지 따로 한 접시를 내놔야 할 정도였다”고 고인을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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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민주화의 거목이 쓰러졌다”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당신을 기억하겠다” “하나회 척결부터 금융실명제,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까지 수고하셨다” 등 고인의 업적을 기리는 추모의 글들이 이어졌다. “외환위기를 초래해 국민들에게 짐을 안긴 건 아쉽다”는 반응도 있었다.

유성운·김선미·박병현 기자
거제=위성욱 기자 calling@joongang.co.kr
사진=송봉근·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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