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운전에 관용은 없다, 걸리면 벌금 대신 징역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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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32)는 지난 8월 9일 오후 8시쯤 세종시 도담동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유턴하던 중 앞서 유턴한 B씨(28)의 차량과 충돌할 뻔했다. 화가 난 A씨는 B씨 차량을 쫓아가며 경적을 울리고 상향등을 수차례 켜는 등 위협을 가했다. 그래도 분이 가시지 않자 중앙선을 넘어 B씨 차량을 추월한 뒤 차를 세우고 B씨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9월부터 벌금형도 가능해졌지만
법원, 징역 선고 뒤 집유 판결 많아
"대형 사고 날 수 있어 책임 무거워"
유턴 시비 30대, 징역 6월 집유 2년

 대전지법 형사1단독 채승원 판사는 17일 특수협박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아울러 12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했다. 채 판사는 “보복운전은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책임을 엄하게 물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보복운전은 통상 폭력행위처벌법(폭처법) 3조 1항(흉기 등을 이용한 협박죄)으로 처벌해 왔다. 이 조항은 흉기 등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고 폭행 및 협박, 재물손괴 등을 한 경우 1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처벌하도록 규정돼 있다. 자동차라는 ‘위험한 물건’으로 상대 운전자를 협박한 것으로 본 것이다. 벌금형이 없어 처벌이 무거운 편이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지난 9월 이 조항에 대해 “형법 284조 특수협박죄 등으로도 처벌할 수 있다”며 위헌 결정을 했다. 이후 보복운전 사안은 특수협박죄로 기소되고 있다. 특수협박죄 형량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으로 폭처법보다 관대하다.

 하지만 헌재 결정 이후에도 처벌 수위는 낮아지지 않고 있다. 사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여전히 징역형을 선고하는 추세다.

 보복운전을 해 특수협박 혐의로 기소된 조모(35)씨는 지난 12일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조씨는 앞선 차량이 서행한다는 이유로 추월해 급정거했다.

  헌재 결정 이전에는 어땠을까. 최모(51)씨는 지난해 11월 서울 역삼동 4차로에서 3차로로 끼어들려는데 앞 차량이 비켜주지 않자 추월한 뒤 급제동했다. 앞 차량이 2차로, 1차로로 연이어 피했는데도 뒤따라가 위협했다. 최씨에겐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2013년 고속도로에서 차선 변경 문제로 뒤 차량과 시비가 붙어 보복운전을 한 C씨(37)의 경우는 사망사고로 이어졌다. 시속 110㎞로 달리다 급정거하는 바람에 5중 추돌사고로 이어졌고 맨 마지막에 추돌한 트럭기사가 그 자리에서 숨졌다. C씨에게는 징역 3년6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이 밖에 보복운전 사례로는 ▶차선을 물고 지그재그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진로를 방해하는 행위 ▶진로를 급하게 변경하면서 중앙선이나 갓길 쪽으로 상대 차량을 밀어붙이는 행위 등이 있다.

 서울 지역 법원의 한 판사는 “블랙박스가 많아지면서 보복운전인지에 대한 확인이 쉬워졌고 처벌 사례도 급격히 늘었다”며 “형법 처벌이 가능해져 벌금형을 선고할 수 있게 됐지만 차량이라는 위험한 물건으로 상대방을 심하게 위협하거나 부상을 입힐 경우엔 이전처럼 징역형을 선고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대전=신진호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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