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 정연승 기리자” 추모비 세운 고향 주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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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 금가면 주민들이 지난달 28일 고 정연승 상사 추모기념비 제막식을 하고 있다. [사진 충주시]

지난달 28일 오후 충북 충주시 금가면사무소 광장. 마을 주민 500여 명이 충주가 고향인 고(故) 정연승 특전상사를 추모하기 위해 모였다. ‘정연승 마지막까지 너답다’ ‘의인(義人) 정연승 상사 고향 추모 행사’라고 적힌 대형 플래카드도 걸렸다. 주민 홍기황(54)씨는 “연승이는 마을 어귀에서 집까지 어르신 봇짐을 짊어주던 마음이 따뜻한 동생이었다”며 “그의 따뜻한 마음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 피해자 구하다 목숨 잃은 군인
소년소녀가장 등 이웃 돕기도 앞장
부모 있는 고향서 성금 모아 추모식
“마음 따뜻한 동생, 영원히 기억할 것”

 충주시 금가면 주민들이 교통사고로 쓰러진 사람을 돕다 숨진 정 상사를 위해 성금을 걷고 추모비까지 세웠다. 정 상사는 지난 9월 8일 경기도 부천시 송내역 부근 도로에서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피해자 구조에 나섰다가 신호를 위반하고 돌진한 트럭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35세의 젊은 나이였다.

 이 소식은 사고 이틀 뒤 금가면에 알려졌다. 이날 경로잔치를 준비 중이던 주민들은 “의로운 일을 한 청년을 우리가 보듬자”는 의견을 냈고 곧바로 추모행사추진위원회가 꾸려졌다. 금가면 주민자치위원회 등 16개 사회단체 대표와 정 상사가 나온 금가초·중원중·충주공고 동문회가 참여했다. 당초 “고인의 49일 제사를 함께 치르자”라는 의견이 나왔지만 유족들과 상의해 추모비 건립과 추모 행사를 치르는 것으로 정했다.

 주민들은 추모비 건립을 위해 십시일반으로 800여만원을 모았다. 추진위는 2m 크기의 추모비를 제작하는 데 300만원을 쓰고 나머지는 유족에게 위로금으로 전달할 예정이다. 이성균(53) 추진위원장은 “주민들이 조금씩 뜻을 모아 성금을 만들어 행사를 준비했지만 부모의 마음을 어찌 다 위로할 수 있겠느냐”며 “고향 주민들의 끈끈한 정으로 유족들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 상사의 고향은 충주시 금가면 잠병리 초당마을이다. 아버지 정경화(71)씨와 어머니 김영자(70)씨가 이 마을에 살고 있다. 충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정 상사는 1999년 특전부사관으로 임관해 제9공수여단 정찰대와 고공팀에서 근무했다. 그러면서 2000년부터 최근까지 경기도 시흥에 있는 양로원을 찾아 목욕과 청소·빨래 봉사를 하며 어려운 이웃들을 돌봤다. 결식아동과 소년소녀가장들을 돕기 위해 매월 10만원씩 후원도 해왔다.

 정 상사의 어머니는 “폐품을 주워 판 돈으로 마을 어르신들께 금반지도 해주고 경로잔치도 베풀던 아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쏟아진다”며 “아들을 위해 추모 행사를 열어준 주민들이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추모비는 금가면사무소 앞에 있는 역대 이장과 새마을지도자 공적비와 나란히 세워졌다. 추모비에는 “어려운 근무 여건에서도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고 박봉을 쪼개 소년소녀 가장을 후원한, 강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진정한 특전용사였다”고 기록됐다. 추모식은 추모기념비 제막과 함께 추도시 낭독, 유족 대표 인사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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