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중·일 연쇄 정상회의, 만남 위한 만남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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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우여곡절 끝에 오는 31일 한·중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한·중·일, 한·일 정상회의가 다음달 1, 2일 차례로 열리게 됐다. 이번 세 차례의 정상회의는 갈등과 협력의 필요성이 뒤엉킨 가운데 열리는 것이어서 어느 때보다 미묘하기 짝이 없다. 한국은 특히 세 차례의 지도자 간 만남의 계기가 된 한·중·일 정상회의의 주빈국이다. 우리 입장을 적극적으로 나타내는 동시에 모든 회의가 원만하게 돌아가게 할 책임도 지고 있는 셈이다.

 이번 연쇄 회동의 중심 격인 한·중·일 정상회의에서는 공통 관심사인 세 나라 간 경제협력, 특히 자유무역지대(FTA) 구축 방안이 깊숙이 논의될 공산이 크다. 3국은 이미 2012년 한·중·일 FTA 협상을 시작한 뒤 이미 여덟 차례 회동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한국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일본은 2020년 도쿄 여름올림픽, 그리고 중국은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을 열 예정이다. 비록 장소와 시기는 다를지언정 서로 정보를 나누고 도울 방안도 이번 3국 정상회담에서 논의해봄 직하다.

 한·중·일 세 나라의 경제 규모는 아시아의 70%, 외환보유액은 전 세계의 47%를 차지할 정도로 그 비중이 크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바로 붙은 세 나라가 경제적 협력으로 얻을 수 있는 혜택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세 나라 간 협력은 상호 신뢰와 화합을 전제로 한다. 한·일 간에는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가, 중·일 간에는 여기에 더해 영토 분쟁까지 얹혀 있다. 게다가 지난 27일 중국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3국 정상회의와 관련해 “한·중·일에 역사 문제는 피할 수도 없고 경시하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리커창(李克<5F37>) 총리가 참여하는 이번 회의에서 중국 측이 과거사 문제를 강하게 제시할 뜻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국으로서도 내심 바라는 바이겠지만 회의를 주재하는 주빈국으로서는 과거사 문제가 회의 전체를 뒤덮어 경제적 협력과 같은 핵심 사안이 소홀히 다뤄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일자 조정 등을 둘러싸고 적잖은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한·일 정상회의는 더 걱정이다. 막판까지 위안부 문제를 의제로 삼을지, 그리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공식적인 유감 표명을 할지 등을 놓고 양국 간에 줄다리기가 계속됐던 모양이다. 이유야 어쨌든 양측 간에 합의도 없이 한·일 정상회의 날짜를 제안했다고 발표한 우리 정부 당국이나 이에 대해 아는 바 없다고 한 일본 측 모두 볼썽사납긴 마찬가지다. 양국 당국자들도 어렵사리 마련된 한·일 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끝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 모양이다. 회의 후 공동성명 발표나 공식 기자회견마저 없을 거라고 밝힌 것도 그래서다.

 그럼에도 3년여 만에 어렵사리 이뤄진 한·중·일, 한·일 정상회의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안 하느니만 못한 꼴이 된다. 만나 봐야 시간 낭비란 소리가 나오면 다음엔 더 어려워진다. 결코 만남을 위한 만남이 돼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정치적 사안들로 불발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아예 3국 정상회의를 정례화하자는 이야기도 그래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