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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커, 제 발로 찾아오는 시대는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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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김회룡
김회룡 기자 중앙일보 차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베이징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하다 정년퇴직한 젠(簡) 여사는 그 세대의 많은 중국 서민들처럼 나이 쉰이 될 때까지 나라 밖 구경을 못했다. 그러다 생활의 여유가 생긴 5년 전부터 해외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 방문한 나라는 한국이었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있을 수 있나 싶었어요.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거리는 깨끗하고 정감이 넘쳤어요.”

  그런 장점이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건 이듬해 일본을 여행하고 나서였다. “질서 있고 깨끗한 건 물론이고 사람들까지 친절했어요. 아무 식당에 들어가도 청결하고 정성이 넘쳤고, 호텔도 저렴한 곳이었지만 깔끔하고 편리했어요. 솔직히 한국에선 식당과 호텔이 그저 그랬거든요. 볼거리도 ‘아, 여긴 일본이구나’란 느낌을 확실히 갖게 하는 게 많죠. 서울은 멋있고 세련됐지만 그건 선진국 어디나 마찬가지겠죠.”

  젠 여사만의 느낌이 아니다. 필자는 비슷한 경험담을 얘기하는 중국인을 여러 명 만났다. 베이징을 기준으로 보면 서울까진 비행기로 두 시간, 도쿄까진 네 시간 거리다. 그러니 많은 사람이 첫 해외여행을 한국으로 간다. 서울엔 가 봤지만 도쿄나 오사카엔 못 가본 중국인이 아직은 많다. 그런데 곧 상황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해외여행의 목적지로 일본이 한국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선 것이다. 최대 온라인 여행사인 씨트립을 통한 중추절과 국경절(10월 1일) 연휴 기간 예약 상황이 그렇게 나왔다. 도시별로 따지면 서울은 홍콩과 도쿄, 방콕에 밀려 4위로 내려갔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여파라고 핑계를 댈 일이 아니다. 그 이전인 단오절이나 노동절 연휴 때도 일본 예약이 한국을 앞질렀다. 한국 비자 신청 건수는 올 설 연휴를 경계로 지난해보다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베노믹스가 불러온 엔저 요인이 크지만 문제는 우리에게도 있다. 한국을 ‘다시 오고 싶지 않은 나라’로 여기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조사에서 한국에 온 16개국 관광객 가운데 중국인의 재방문 의사는 14위에 그쳤다. 고궁이나 인사동을 둘러보고 난타 공연을 구경한 뒤 동대문 시장이나 명동으로 가서 쇼핑하게 하는 판에 박힌 상품만으론 ‘리피터’로 만들기 힘들다. 여태까지는 가까운 거리와 한류 스타의 덕을 많이 봤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중국인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질수록 가까운 거리는 더 이상 메리트가 아니게 될 것이고, 한류도 영원불변 지속된다는 법은 없다. 그러니 뭔가 다시 찾아오게 만들 새로운 매력을 찾아내야 한다. 젠 여사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선 즐길거리는 많은데 뭔가 한국을 느끼게 하는 건 좀 부족하지 않나 싶어요.”

글=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