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 밀월 때 김일성 섰던 곳에 … 시진핑, 박 대통령 예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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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호 8 면

※실제 자리 배치는 다를 수 있음

다음달 3일 열리는 항일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을 앞두고 중국인민해방군 여군 의장대가 22일 베이징의 한 군사 기지에서 박수 치는 시진핑 국가주석 사진 앞으로 행진하고 있다. 평균 키 1m78cm에 평균 나이 20세인 여성 62명으로 구성된 여군 의장대는 지난해 신설됐고 이번에 처음 열병식에 참가한다. [AP=뉴시스]

중국의 ‘항일 전쟁 및 세계 반(反)파시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식과 열병식’은 9월 3일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다. 중국이 국가 차원에서 항일 전쟁을 대대적으로 기념하고 외국의 국가원수나 정부 수반을 초청한 열병식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중국 정부는 9·3 항일 기념식을 처음으로 국가 차원의 행사로 입법화했다. 러시아가 해마다 5월 9일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자축하는 전승절 행사에서 착안했다고 한다.한국은 히로히토(裕仁) 일왕이 종전 선언을 한 8월 15일을 광복절로 기념한다. 중국은 1945년 9월 2일 도쿄 만에 정박 중이던 미국 미주리호 함상에서 연합군 최고 사령관 맥아더 원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 당시 일본 외상이 항복문서에 서명한 날 하루 다음인 9월 3일을 전승절로 기념한다. 영국·프랑스 등은 독일군이 연합군 사령부에 항복한 5월 8일을 종전일로, 러시아(당시 소련)는 자신들이 베를린으로 진격해 독일로부터 직접 항복문서를 받은 5월 9일(0시43분)을 기념한다.중국은 전승절 열병식만 하는 게 아니다. 12월 13일을 ‘난징(南京) 대학살 사망자 국가 추도일’로 제정해 올해부터 국가 차원의 대대적인 추모 행사를 한다. 유대인들이 1월 27일을 ‘국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추모의 날’로 기념해온 것을 참고했다고 한다.항일과 맥이 닿는 일련의 행사를 중국 정부가 제도화한 것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취임 이후 생긴 큰 변화다. 항일을 앞세우는 데는 정치적 의미가 있다.무엇보다 중국공산당의 자신감이 담겨있다.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자 당시 무력이 약세였던 중국공산당은 국민당과 손을 잡고 항일 국공합작에 들어간다. 항일 전쟁의 주연은 국민당군이었고, 공산당군은 사실상 조연이었다. 45년 일제가 패망한 이후 대만은 55년부터 9월 3일을 군인절로 기념해 오고 있다.개혁·개방 이후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주요 2개국(G2) 반열에 오르자 중국은 축적된 자신감을 바탕으로 항일 전쟁을 중국 전체 인민의 승리로 새롭게 의미부여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10월 25일 대만 광복절을 전후해 기념 학술 토론회를 처음 열고 대만을 비롯, 해외 교포들의 현지 기념활동을 지지한다고 선언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번 전승절 행사의 주제는 ‘역사를 기억하고 선열을 추모하며 평화를 사랑하고 미래를 연다’로 정해졌다. 이런 주제 속에 시진핑 정부가 국내외에 발신하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다만 중국 정부는 역사수정주의 노선을 걷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정부에 대한 중국의 노골적 반일 행사로 비춰지는 데는 신경을 쓰고 있다. 장밍(張明)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은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 기념활동은 어떤 특정 국가를 겨냥하지 않았고 현재의 일본과 일본 국민을 겨냥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중국은 당초 51개국에 대표단을 파견해 달라고 초청장을 보냈다. 그러나 중국과 불편한 관계인 일본과 필리핀은 거절했다.결국 한국·러시아 등 30개국의 국가지도자, 미국·프랑스·호주 등 19개국 정부대표(주중 외교사절 포함), 유엔 등 10개 국제기구 수장이 참석한다. 특히 식민지 지배를 사과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일본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조지프 에스트라다 전 필리핀 대통령이 특별 손님으로 참석한다.각국 주요 지도자들은 3일 오전 10시 2442㎡(66×37m) 면적의 천안문 성루(城樓)에 올라 창안제(長安街)에서 펼쳐지는 열병식을 내려다보게 된다. 외교 소식통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시 주석이 앞줄 한가운데 서고, 왼쪽에 박근혜 대통령이 오른쪽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자리 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외빈을 접대할 때 주인의 오른쪽에 주빈의 자리를 배치하고, 왼쪽에 그 다음으로 중요한 손님을 배치한다. 중국 외교부의 외교 관계 중요도 구분에 따르면 러시아는 가장 높은 ‘전면적 전략 협력 동반자 관계’다. 한국은 그보다 한 단계 낮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다.외교 소식통은 “박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 다음으로 귀빈 대접을 받는다면 중국의 상당한 성의가 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예우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1954년 10월 1일 중국을 방문한 김일성(가운데)이 천안문 성루에서 마오쩌둥(오른쪽)과 나란히 서서 신중국 성립 5주년 기념 열병식을 보고 있다. [바이두]

과거 북·중이 혈맹관계로 가까웠을 때인 54년 10월 1일 김일성 당시 북한 내각 수상이 천안문 성루에 올라 마오쩌둥(毛澤東) 국가주석의 오른쪽에 서서 열병식을 참관했다.하지만 이번에 불편해진 북·중 관계를 반영하듯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방중은 성사되지 않았고 대신 최용해 노동당 비서가 참석한다.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은 “역사적으로 대한민국 국가원수가 천안문 성루에 올라 중국군의 경례를 받는 것은 처음”이라며 “그 자체로도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이번 열병식은 49년 신중국 성립 이후 15번째다. 시진핑 정부 들어 처음인 이번 열병식에는 1만2000명의 중국군이 투입된다. 중국의 첨단 무기들도 대대적으로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사거리 1만~1만3000㎞의 둥펑(東風)-31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쥐랑(巨浪)-2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잉지(鷹擊)-18 초음속 순항미사일, 쿵징(空警)-2000 조기경보기, 중국 공군의 주력인 젠(殲)-10 전투기가 등장하게 된다.사거리 1만4000㎞로 미국 전역이 사정권인 둥펑-41 ICBM, 사거리 1500㎞ 신형 순항미사일인 창젠(長劍)-10,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젠-20 등이 처음 공개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장세정 기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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