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76.2㎜ 포 DMZ 배치 … 한·미, 전투기 8대 편대 비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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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호 5 면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로 긴장감이 고조된 22일 한·미 전투기 8대가 한반도 상공에서 대북 무력시위 비행을 하고 있다. [사진 공군]

22일 오후 늦게 남북 고위급 접촉이 전격적으로 이뤄졌지만 군은 이날 북한의 확성기 포격 도발에 대비해 하루 종일 고강도의 경계태세를 유지했다. 군 소식통에 따르면 대북 정보감시태세인 워치콘(Watch Condition)을 ‘워치콘 2’로 유지했다. 북한의 도발 위협이 심각한 상황일 때 발령하는 ‘워치콘 2’ 단계에서는 첩보위성·정찰기 등을 총동원해 대북 감시활동과 정보분석을 고강도로 진행한다. 앞서 군은 북한의 포격 도발(20일) 다음날인 지난 21일 오후 늦게부터 ‘워치콘 3’에서 ‘워치콘 2’로 올렸다. 평상시는 ‘워치콘 4’ 상태지만 군은 북한의 지뢰 도발이 있었던 4일 ‘워치콘 3’로 올렸다.

이날 북한의 최후통첩 시한(오후 5시)을 몇 시간 앞두고 북한군의 움직임은 실제로 긴박하게 움직였다고 군 소식통이 전했다. 북한은 확성기 타격을 노린 듯 이날 비무장지대(DMZ) 일대에 남측 대포병레이더에 잘 잡히지 않는 직사화기인 76.2㎜ 견인포를 배치했다. 76.2㎜ 견인포는 평소 DMZ 밖에 배치된다. 중화기를 DMZ 안으로 끌고 들어온 행위 자체로도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군이 전했다. 전날에는 북한군이 갱도에 보관해온 방사포(다연장 로켓) 등을 갱도 밖으로 이동하는 움직임도 군에 포착됐다. 북한 후방 지역의 포병부대 움직임도 있었다.

견인포가 직사화기로 확성기를 직접 타격하기 위한 수단인데 반해 후방지역 포병부대는 방사포 등 화력이 센 곡사화기를 운용해 휴전선 이남에 상당한 피해를 줄 수 있다. “전면전 불사”를 외쳐온 북한이 국지도발을 넘는 광범위한 도발을 할 수도 있는 움직임이었다.

실제로 조선중앙통신의 22일 보도에 따르면 북한 외무성은 전날 늦게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 군대와 인민은 단순한 대응이나 보복이 아니라 우리 인민이 선택한 제도를 목숨으로 지키기 위해 전면전도 불사할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노동신문은 22일자 사설에서 “적들의 도발에는 단호하고 강도 높은 징벌로, 침략전쟁에는 무자비한 보복 성전으로 대답하는 것이 조선 군대와 인민의 혁명적 기질”이라고 보도했다.

추가 도발 시 미군 전략무기 배치 전망
북한의 압박에 맞서 한·미는 물리력을 과시하며 강력한 맞대응 의지를 보였다. 이날 오전 미 7공군 소속 F-16 전투기 4대와 한국 공군의 F-15K 전투기 4대 등 양국의 2개 전투비행 편대가 출격했다. 한·미 전투기 8대는 정오쯤 강원도 동해 해상에서 합류해 경북 예천 북쪽 상공에서 서쪽의 경기도 오산 상공으로 한 시간가량 편대 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 관계자는 “편대 비행 중 서로 교신을 하면서 가상의 표적을 때리고 적의 항공기 공격에 대응하는 훈련도 진행했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한·미는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비해 ‘한·미 공동 국지도발대비계획’을 적용한 연합작전체제를 가동했다.
이날 공군의 무력시위가 시작되기에 앞서 최윤희 합참의장과 마틴 뎀프시 미 합참의장이 이례적으로 통화했다. 양측은 북한군이 추가 도발하면 한·미 동맹 차원에서 강력히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고 군 소식통이 밝혔다. 뎀프시 의장은 지뢰 도발 이후 커티스 스캐퍼로티 한미연합사령관과 계속 통화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남북 고위급 접촉 이후에도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면 미군의 전략 무기들이 한반도에 전개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실제로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과 뒤이은 무력도발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됐을 당시 미국은 한·미 독수리훈련 시점에 B-52 전략폭격기와 B-2 스텔스 폭격기 두 대를 파견했다. B-52는 장거리 음속 전략 폭격기로 사거리 최대 3000㎞의 공대지 핵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다. B-52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탑재된 핵잠수함과 함께 미국의 3대 핵전력이다. B-2는 핵폭탄 16발을 탑재할 수 있는 최신형 폭격기로 당시 미국 미주리주 화이트맨 공군기지를 출발해 군산 인근 서해상 직도에 훈련탄을 투하하고 돌아갔다. 또 미 해군 7함대 소속 조지워싱턴함이 일본 해군기지에서 한반도로 이동해 훈련했고, 세계 최강 전투기로 불리는 F-22 랩터도 당시 이례적으로 오산 공군기지에 머물기도 했다.

군사 대치 와중에 치열한 외교전도
군사적 대치 국면에서도 다른 한편에선 치열한 외교전도 펼쳐졌다. 남북은 국제사회의 지지와 우호적인 여론을 확보하기 위해 긴박하게 움직였다. 북한은 외교 채널을 총동원해 평양과 해외 주요 공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선전전을 폈다.

안명훈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는 21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후통첩 시한까지 대북 선전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강한 대응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대남공작 총책인 김영철 정찰총국장은 전날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북한 주재 외교관들과 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긴급 브리핑을 열어 한국 정부를 비난했다. 그는 “남조선 괴뢰들의 정치·군사적 도발은 나라의 정세를 위기일발의 폭발 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기필코 값비싼 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와 김형준 주러시아 북한대사도 이날 각각 베이징과 모스크바에서 외신 기자회견을 자청해 남측에 강경 대응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 정부는 22일 오후 외교부와 국방부가 이례적으로 외신을 상대로 합동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의 여론전에 맞불을 놨다. 황준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21일 밤 북핵 6자회담 중국 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와의 통화에서 “건설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해외 출장 중이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일정을 하루 축소하고 22일 귀국길에 올랐다. 21일(현지시간) 코스타리카에서 열린 제7차 동아시아·라틴아메리카협력포럼(FEALAC) 외교장관회의 참석차 18일 출국해 당초 24일 귀국할 예정이었다.

장세정·추인영·오이석 기자?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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