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시각장애 국회의원의 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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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제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단상에 선 한나라당 정화원 의원을 향해 여야 의원들이 기립 박수를 터뜨리는 감동적인 장면이 나왔다. 시각장애인으로서 헌정 사상 첫 대정부 질문을 한 것을 격려하는 박수였다. 의정활동을 위한 점자 자료를 읽느라 손가락 끝이 벗겨질 정도이고, 47분 질문에 필요한 점자 원고를 모두 외워 장애를 뛰어넘은 그의 노력은 치하받을 만하다.

정 의원은 국무위원들을 향해 "현 정부는 복지정책이 거꾸로 가고 있는 장애인 불참 정부"라고 질책했다. 교육이나 편의시설.취업.생계대책 등에서 차별과 편견을 개선해 그들의 고통을 덜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장애인들의 비극적 죽음은 그의 호소를 뒷받침한다. 청각장애인인 형과 형수, 정신지체 장애인인 조카를 부양해 오던 60대 노인은 부양의 괴로움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형의 가족 셋을 살해했다. 40대의 한 청각장애인은 불법 노점상을 하다 적발돼 부과된 70만원과 월세 30만원을 마련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극단적인 사례지만 가난과 소외 속에 방치된 우리나라 450만 장애인 현실의 한 단면이다.

올해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앞두고 84개 시민사회단체는 정부 행사를 거부한 채 장애인 차별 철폐 공동투쟁을 벌이고 있다. 벌써 4년째 계속되는 행사다. 이동수단이 마땅치 않아 매일 외출하지 못하는 장애인이 40%에 달하고, 70% 이상의 장애인들이 실업에 허덕이고 있으며, 50%가 넘는 장애인들의 학력이 겨우 초등학교 졸업 이하인 것이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 현실이다. 이러니 국가인권위 건물에 '대한민국에 장애인 인권은 없다'는 플래카드가 걸려도 할 말이 없다.

누구라도 갑자기 장애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장애의 부담은 당사자나 그 가족만이 아닌 우리 사회가 함께 감당해야 한다.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인권의 당당한 주체로 인정하고 그들의 교육과 생계, 사회적 권리를 향상시키는 종합대책이 꾸준하게 실천돼야 건강한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