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의 밤 깨운 신데렐라 임지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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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퀸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 우승자 임지영. 비슷한 스타일의 바이올리니스트를 찾기 어려운 개성 있는 신인이다. [사진 대관령국제음악제]

매년 여름 대관령국제음악제에는 연주자뿐 아니라 학생들도 모인다. 2주 동안 학생 120여 명이 연주자들에게 레슨을 받고, 학생 음악회도 연다.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20)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학생으로 이 음악제에 참가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4학년인 그는 7년 동안 꼬박 대관령 음악학교에서 음악을 공부했다. 하지만 올해는 음악제의 가장 주목받는 연주자로 껑충 뛰어올랐다. 23일 개막 공연의 첫 연주를 맡아 전체 음악제의 문을 열었다. 이날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를 연주한 그는 확신에 찬 해석, 오차 없는 기교로 무대를 장악했다.

 1년 만의 ‘신분 변화’는 현재 음악계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임지영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그는 지난 5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퀸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한국 바이올리니스트로는 처음이다.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는 연주자에게 꿈의 무대라 할 만큼 큰 대회다.

 한국에서만 주목받는 게 아니다. 국내 첫 정식 무대였던 대관령국제음악제 이후 일본·폴란드·룩셈부르크·미국·홍콩 등에서 12월까지 30여 번 연주가 계획돼 있다. 모처럼 굵직한 스타 바이올리니스트가 탄생했다.

 24일 대관령에서 만난 임지영은 “나는 타고난 게 많지 않은 음악가”라고 소개했다. “주변에 연습을 많이 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무대에서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런 연주자가 아니다. 연습, 또 연습한다”고 말했다.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앞두고 연습을 많이 해 왼팔 인대에 부상까지 입었다고 했다.

 무대 위에서 반짝이는 끼도 없는 편이다. “연주자들은 대부분 예민한 완벽주의자고,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데 나는 무던하고 털털한 편”이라고 말했다. 남 앞에 나서는 것도 즐기지 않고, 묵묵히 음악을 공부하며 재미를 느낀다고 했다. ‘스타’보다 ‘연구자’에 가까운 타입이다.

 “타고난 게 없다”고 했지만 실은 무대 위에서의 집중력이 뛰어나다.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마지막 무대에서도 전혀 떨리지 않아 걱정됐을 정도”라고 했다. 어려서부터 무대에서 긴장한 적이 없고 연주가 시작되면 푹 빠져 집중한다.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치열하게 고민해 내 음악을 하니까 누가 뭐래도 자신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해외에서 인정받는 국내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는 적지 않다. 하지만 임지영처럼 힘 있고 우직하며 뚝심 있는 스타일은 많지 않다. 임지영은 “앞으로도 내 개성을 유지하며 연주하는 게 목표”라며 “잘하는 연주자는 너무나 많지만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렇게 분명한 성격의 바이올리니스트라면 지금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가 짧게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창=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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