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블랙아웃 걱정했는데 … 불황에 전력 30% 남아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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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4시 정부 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5층 전력산업과. 사무실 벽에 붙은 ‘일일 전력수급 현황’ 전광판은 공급예비율 24.35%를 가리켰다. 전국 발전소에서 생산 가능한 전력이 100이라면 24는 쓰지 않고 그냥 놀려두고 있다는 의미다. ‘남아도는 전기를 어찌하리오’. 산업부의 고민이다. 20일 전력거래소 집계에 따르면 지난주 전력 예비율(공급예비율 기준)은 평균 29.2%를 기록했다. 전력 소비가 적은 주말 통계는 빼고 낸 수치다. 16일과 17일 전력 예비율은 30%를 웃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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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2일부터 다음달 28일까지를 ‘하계 전력수급 대책 기간’으로 잡았다. 무더위로 에어컨처럼 전력 소비가 많은 제품 사용이 몰리는 시기다. 그런데 전력 수요는 줄고 공급은 넘치는 기현상이 빚어졌다. 일일 최대치를 기준으로 이달 1~19일 평균 전력 사용량은 6583만㎾로 지난해 같은 기간 6782만㎾와 비교해 2.9% 감소했다. 반면에 전력 공급 능력은 지난해와 비교해 5.0% 증가한 8830만㎾에 달했다. 더위가 한창이지만 예비율이 20~30%를 넘나드는 까닭이다.

 김범수 산업부 전력수급팀장은 “아직 장마철이라 전력 사용 피크(최대) 시기는 아니다. 휴가철이 끝난 다음달 셋째 주 정도에 전력 피크가 오리라 보고 있는데 예비율은 9.1% 정도로 예상한다”고 했다. 예비율 5% 선을 겨우 유지했던 2~4년 전과 비교하면 훨씬 여유로운 상황이다. 산업부와 한국전력이 전력 수요 관리를 해야 하는 여름철을 앞두고 지난달 21일 전기요금을 인하하는 ‘배짱’을 부릴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 있다는 해석이 나올 정도다.

 전기가 남아도는 현상이 나타난 배경엔 여러 원인이 얽혀 있다. 우선 2011년 9월 15일에 있었던 ‘블랙아웃(대정전)’ 트라우마다. 늦더위로 전력 수요가 치솟았고 수급을 맞추지 못한 당국이 대규모 강제 정전을 한 사건이다. 정부는 부랴부랴 전력 수급 계획을 다시 짰고, 화력·복합발전소와 원전 추가 설립을 결정했다. 블랙아웃 이후 민간 발전소가 우후죽순 세워진 것도 ‘전력 과잉 공급’에 한몫했다. 정양호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장은 “전력 예비율을 올린 결정적 요인은 경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체 전력 가운데 51%는 산업시설에서 사용하고 있다. 경기 침체로 공장 가동률이 떨어졌고 전기 수요 감소로 이어졌다”고 했다. 엘니뇨로 대표되는 이상기후도 전력 수요 예측을 어렵게 한다.

 그런데 전기는 비싼 에너지다. 한국은 전기를 만들 때 필요한 석탄, 석유, 가스 같은 연료의 거의 전량을 수입해 쓴다. 원자력발전소는 발전 원가가 낮긴 하지만 원전 설치에 따른 주민 반발, 방사성 폐기물 처리 등으로 기회비용이 상당하다. 그래서 정확한 전력 수요 예측이 중요하다. 장기 평균으로는 15% 안팎을 적정 예비율로 본다. 전력 사용량이 최대치에 이르렀을 때 예비율은 5~10% 수준에서 유지하는 게 가장 경제적이라고 전문가는 평가한다. 최근 예비율 수치를 놓고 전력 과잉 생산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수립 중인 ‘제7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두고 쟁점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본부장은 “정부로선 수급 전망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블랙아웃 사고를 다시 겪지 않으려고 전력 예비율을 높게 가져가려는 입장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전영환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발전소는 짓는 데 평균 5년이 걸린다. 단기 전력수급 결과를 가지고 장기 수급 계획을 세우려 한다면 전력 부족과 과잉 사태를 4~5년 주기로 반복해서 겪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단기 변수보다는 장기적 시각에서 전력수급 계획을 좀 더 엄밀히 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세종=조현숙·김민상 기자  newear@joongang.co.kr

◆전력 예비율=전국 발전소에서 만들 수 있는 전력량에서 사용되지 않은 전력량이 차지하는 비율. 얼마만큼 예비 전력이 있는지 보여주는 수치로 전력거래소가 실시간 집계한다. 예비율이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정부가 수요 관리(사용 제한)를 하거나 강제 정전 조치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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