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속방지턱 넘다 사고…60%가 도로 위 흉기로 방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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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 : 지난3월 황모씨(42)는 운전중에 갑자기 눈 앞에 과속방지턱을 발견하고 급브레이크를 밟았다가 차 바닥이 심하게 긁히는 피해를 입었다. 과속방지턱을 알리는 표지판이 없었던데다 과속방지턱의 흰색과 노란색 도색이 벗겨져 잘 보이지 않았던 게 주 원인이었다.

#사례1 : 지난해 10월 9인승 승합차를 몰던 옥모씨는 시속 40km로 과속방지턱을 넘다가 뒷좌석 3번째열 탑승자가 천장에 머리를 부딪혀 뇌진탕으로 치료를 받았다. 과속방지턱이 너무 높아 ‘점프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보행자와 운전자의 안전을 위해 설치된 과속방지턱이 오히려 안전을 위협하는 흉기로 방치되고 있다. 도색이 벗겨져 밤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높이와 길이도 제각각인 것들이 태반이다.

16일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서울시내 생활도로에 설치된 과속방지턱 375개 중 무려 98.7%(370개)가 도색이 벗겨져 있었다. 과속방지턱은 야간이나 우천시 운전자가 존재를 쉽게 알고 감속할 수 있도록 반사성 도료(자동차 전조등 불빛이 과속방지턱 노면에 반사돼 오는 정도)로 도색돼야 한다. 또한 과속 방지턱의 위치를 알리는 교통안전표지를 설치한 곳은 4.5%에 불과해 운전자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통과할 우려가 높았다.

특히 원호형 과속방지턱 327개 중 62.1%는 높이가 길이 등 설치기준을 지키지 않아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도로법에 따르면 과속방지턱 높이는 10cm, 길이는 3.6m다. 하지만 도로위로 완만하게 올라온 원호형이 아니라 높이 우뚝 솟은 형태이거나 폭이 너무 좁아 차량의 하단이나 적재된 부품이 파손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과속방지턱이 깨지는 등 형상이 변해 보행자가 걸려 넘어지거나 자전거, 이륜차에 위협이 되는 곳도 41%(134개)로 확인됐다. 실제 최근 3년간 소비자원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에 접수된 과속방지턱 관련 위해사례는 33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규격보다 높은 과속방지턱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소비자원과 보험개발원 자동차기술연구소와 공동으로 실시한 모의주행시험에서도 증명됐다. 비규격 방지턱은 높이 14.5cm로 설정했다. 그 결과 차체가 낮은 승용차는 속도와 관계없이 비규격 과속방지턱을 통과할 때 차량 하부(서브프레임)가 지면과 충돌해 규격(높이 10cm) 방지턱을 통과할 때 보다 충격이 약 5배 높았다. 또 일정거리 동안 타이어가 노면과 접촉하지 않는 점프현상이 발생해 돌발 상황에서 브레이크를 밟거나 조향장치를 조작하는 등 신속한 대처가 어려운 것으로 확인됐다. 차체가 높은 SUV 차량 역시 시속 60km로 비규격 방지턱을 통과한 후 차량 바퀴 정렬값 중 하나인 휠얼라이먼트 토우값이 변형됐다.

‘더미’(사람모형)를 이용한 탑승자 안전시험 결과 안전벨트를 착용한 경우엔 다소 높은 비규격 방지턱도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하지만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시속 60km로 비규격 방지턱을 통과하자 승용자 뒷자석에 앉은 더미의 머리가 차량 천장에 부딪힌 후 무릎이 앞좌석과 충돌해 탑승자 부상의 우려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소비자원은 “과속방지턱이 눈에 띄지 않거나 안내표지가 없는 경우 차량파손 뿐 아니라 탑승자와 보행자의 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며 “관계 기관에 교통안전표지 설치기준을 보완하도록 건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사진설명
1. 시속 60km 주행시 비규격 과속방지턱 통과 연속사진
2. 과속방지턱 도색상태
3. 과속방지턱 파손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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