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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SK, 어설픈 대응 … 김광현 ‘유령 태그’ 논란 키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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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SK 김광현(오른쪽에서 둘째)이 9일 대구 삼성전에서 빈 글러브로 최형우를 태그하고 있다. 공은 동료 브라운(오른쪽)의 미트 안(원)에 있었다. [KBSN스포츠 캡처]

김광현(27·SK)의 ‘유령 태그’에 대한 여론 재판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그가 의도적으로 트릭(trick) 플레이를 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렇다고 그에게 “반칙을 했다”며 ‘양심 선언’을 하라고 강요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왜 김광현에 대한 비난이 점점 커지는 걸까.

 지난 9일 대구경기 4회 말 상황을 재구성해 보자. 2사 2루에서 삼성 박석민의 내야플레이를 잡기 위해 SK 투수 김광현과 1루수 브라운이 뛰어들었다. 공은 원바운드 됐고, 김광현이 홈으로 뛰어들던 최형우를 태그해 아웃 판정이 내려졌다. 사실 공은 브라운 글러브에 있었고 주자를 태그한 김광현의 글러브는 비어 있었다. 김광현은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며 브라운과 귓속말을 했다. 순간 브라운이 공을 떨어뜨렸다. 김광현이 브라운보다 더 당황했다. 그는 중계 카메라를 의식하며 시선을 돌렸다. SK는 4회 말 실점 위기를 넘겼으나 연장 11회 접전 끝에 1-2로 졌다. 경기 후 김광현은 구단을 통해 “태그를 위한 연속동작이었다. 속이려고 했던 행동은 절대 아니었다”고 전했다.

 태그 플레이에 고의성이 없었다는 건 팬들이 대부분 인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진솔한 해명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김광현이 “본의 아니게 심판판정에 혼란을 일으켰다. 페어플레이를 하지 못해 유감”이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적절한 시기에 진정성 있는 해명(또는 사과)을 했다면 팬들은 깨끗이 납득했을 것이다. 게다가 SK는 이 경기에서 졌기 때문에 이 문제를 깔끔하게 털고 갈 수 있었다. 어쩌면 박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SK 구단은 “고의가 아니었다”는 말로 마무리하려 했다. 그럴수록 더욱 마무리가 안 되고 있다. 일부 팬들은 “트릭 플레이도 경기의 일부다. 야구는 원래 서로 속이는 게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팬들이 스포츠를 보는 건 승리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과정부터 결과까지 정의롭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스포츠에 열광한다. 일상생활에서 반칙과 편법이 워낙 많기 때문에 정의에 대한 욕구가 스포츠에서 더 크다. 이런 관점에서 ‘유령 태그’는 팬들의 기대를 크게 저버린 행위였다.

 야구에서 일어나는 트릭 플레이는 대개 상대를 속이는 것이다. 김광현은 심판을 속였다. 워낙 특이한 장면이었기 때문에 많은 팬들이 봤고 논란이 커졌다. 이럴때 트릭이나 관행이 정의를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SK는 이를 인지하고 전략적으로 잘 대응했어야 했다. 선수가 직접 나서기 어렵기에 감독과 구단이 김광현을 위한 출구전략을 만들어야 했다. 팬들에게 적극적으로 해명했다면 김광현에게 쏠리는 비난을 덜어줄 수 있었다.

 SK 일부 선수들은 “우리가 뭘 잘못했나. 경기 중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김광현이 사과하거나 구단이 해명하면 우리가 지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SK 구단은 선수단의 사기가 떨어질까 우려해 ‘유령 태그’에 고의성이 없었다는 점만 반복해 강조하고 있다. 여전히 승부에만 빠져 있다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을 비껴가는 것이다.

 김용희(60) SK 감독은 이튿날(10일) “그 문제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 빨리 정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에이스를 대신해 감독이 적극적으로 해명하거나 반박하지 않았다. 남말 하듯 ‘유체이탈 화법’으로 넘어갔다. 김광현은 지난 12일 왼 팔꿈치 염증을 이유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올스타 팬투표 1위(드림올스타 선발투수)인 그가 18일 올스타전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 또한 석연치 않다.

 이번 논란에 대한 공식입장을 요구하자 SK 구단은 “감독과 같은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SK 구단은 “그래도 우리 편을 들어주시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 말에서 SK 구단의 상황대처 전략을 짐작할 수 있었다.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것이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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