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식의 야구노트] 관중 1위 연봉 4위 LG, 뭐가 모자라 9위인가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2년 연속 유광점퍼를 입고 가을 야구를 즐긴 LG 팬들은 올 시즌 큰 실망에 빠졌다. 지난 10일 잠실 홈에서 한화에 진 뒤 빠져나가는 LG 선수들. [양광삼 기자]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LG 트윈스 팬 라금성입니다. ‘야구노트’에 기고하는 제 이름은 가짜이지만 LG를 사랑하는 마음은 진짜입니다. 전 모범적인 LG팬입니다. 지면 격려하고, 이기면 환호하죠. 저뿐 아닙니다. 성적은 바닥을 기고 있지만 LG는 올 시즌 최다 관중(69만5974명)을 기록 중입니다. LG 팬들은 1등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LG는 왜 계속 9위일까요? 지난해처럼 최하위에서 4강까지 올라갈 걸로 믿었지만 이제 좀 지쳤습니다. 벌써 144경기 중 87경기(60%)가 끝났는 걸요.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암흑기를 보내면서도 LG 팬들은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팀이 만들어지는 기간이다. 삼성·SK처럼 상위권에 한 번 오르면 몇 년간 우승에도 도전할 수 있다”고요. 지난해를 대세상승기의 시작으로 봤죠. 그러나 올해 LG는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선수들이 열심히 하는데 이기지는 못하고, 유망주들이 등장해도 결국 주전을 뛰어넘지 못하죠. 삼성처럼 시스템이 안정된 것도, 넥센·NC처럼 활력이 도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LG가 어디가 모자란가요? 글로벌 그룹 LG 직원들로 프런트가 구성돼 있고, 유능하다는 양상문 감독님도 모셔왔습니다. 박용택·이진영·정성훈 선수의 통산 성적을 보면 ‘야구천재’임이 틀림없습니다. LG가 왜 9위에 있어야 할까요. 전문가들도 속 시원히 이유를 말하지 못하더군요. 아는데도 안 하시는 것일 수도 있고요.

 구경꾼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LG는 하나로 뭉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LG 선수들이 강한 팀워크를 보였던 건 두 차례 정도로 기억합니다. 2002년 김성근 감독님은 선수들을 완전히 장악했죠. 2013년 김기태 감독님은 선수들을 존중해 스스로 뛰게 했습니다. 정반대 형태지만 감독과 선수들이 하나의 목표를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양상문 감독님은 합리적인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LG 선수들은 그 합리적인 계산대로 움직이지 않죠. 젊은 선수들은 실수를 연발하고, 출전 기회가 줄어든 베테랑은 불만을 갖습니다. 이걸 갈등이 아닌 협력으로 바꾸는 게 리더십입니다.

 물론 지도자의 리더십 문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선수들의 팔로십(followship)이 더 큰 문제죠. LG 감독은 평균 2년에 한 번씩 바뀌었고, 선수들이 감독을 이기는 문화가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올해 LG의 최고 해프닝은 외국인 선수 한나한의 퇴출이었습니다. 종아리 부상을 이유로 5월 7일부터 뛴 그는 타율 0.327, 홈런 4개를 기록하다 6월 13일 LG를 떠났습니다. 한나한은 발표된 연봉만 100만 달러(약 11억원)에 이르는 비싼 3루수입니다. 그러나 수비와 주루가 전혀 되지 않았죠. 그런데도 LG 구단은 한나한의 고별 기자회견을 열어줬습니다. 그는 “LG에 미안하다. LG는 정말 좋은 구단”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스카우트 실패를 반성하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이별로 미화하는 LG 프런트의 솜씨에 놀랐습니다.

 강한 팀은 하나가 된 팀이라고 생각합니다. 구단과 선수단이 각자의 역할을 잘하고,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면 힘이 모이는 법이죠.

 다시 근원적인 질문을 합니다. LG는 왜 9위일까요? 설마 소문대로 그룹 고위층이 야구단에 간섭을 해서일까요? 그룹이 구단을 대신하고, 구단이 감독을 대신하고, 감독은 선수를 탓하고, 선수는 감독을 탓하는 악순환이 진짜로 진행 중인가요?

 LG가 10년 동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을 때 ‘LG 팬은 최고의 사윗감’이라는 말이 유행했죠. 아무리 속상해도 참고 기다리는 LG 팬이라면 딸을 줘도 좋을 거란 뜻이었습니다. 요샌 이런 반박도 있습니다. ‘LG 팬 사윗감은 겉으로는 멀쩡해도 속병이 있을 것’이라고요. 요즘 LG 팬들은 예전처럼 극성스럽지 않습니다. LG가 당장 우승하길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모두 하나로 뭉쳐 열심히 뛰는 모습만 보여주면 됩니다. 작은 희망을 주세요. 더 큰 사랑을 드리겠습니다.

글=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사진=양광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