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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똑딱이·거포 다 된다 … 눈 밝은 4번타자 김태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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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야구팬들에게 김태균(33·한화)의 이미지는 두 가지다. ‘거포’와 ‘똑딱이’.

 김태균은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일본전에서 당대 최고의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공을 받아쳐 도쿄돔 광고판을 때리는 비거리 140m짜리 대형 홈런을 뽑아냈다. 대회 내내 맹타를 터뜨린 김태균은 대회 홈런왕(3개)과 타점왕(11개)에 오르며 한국을 대표하는 4번타자가 됐다.

 2012년 KBO리그에선 89경기를 치를 때까지 타율 4할 이상을 기록했다. 2000년대 들어 가장 놀라운 안타행진이었지만 일부 팬들은 장타가 적게 나온다고 그의 실력을 폄훼했다. 그해 김태균의 홈런은 16개, 타점은 80개. 4번타자 치고 적었던 것도 사실이다.

 천안북일고를 졸업하고 2001년 한화에 입단한 김태균은 그해 88경기에서 20홈런을 때렸다. ‘제2의 장종훈’, ‘제2의 이승엽’으로 불렸던 그가 홈런왕에 오른 건 한 차례(2008년 31개)뿐이었다. 2010~11년 일본 롯데에서 뛰다 복귀한 이후 한 시즌 20홈런을 넘지 못했다. 큰 체격(1m85㎝·110㎏)에서 뿜어나오는 힘은 차고 넘친다. 김태균은 올스타 홈런더비에서 세 차례(2005·07·12년)나 우승했다. 2010년 일본 올스타 홈런더비에서도 1위에 올랐다. 그런데 타격 스타일은 홈런왕보다 타격왕에 가깝다. 한화 팬들의 의견은 “김태균은 장타를 더 쳐야 한다”는 쪽과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쪽으로 갈렸다.

 김태균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스윙 밸런스다. 홈런도 좋지만 필요할 때 적시타를 때리고 볼넷으로 출루하는 것도 중요하다. 홈런을 의식하다 밸런스가 무너지면 팀에게도 큰 손해”라고 말했다. 그는 힘보다 눈에 의존하는 야구를 한다. 덤비지 않고 기다리는 야구다.

 그의 몸은 4번타자이지만 눈은 1번 타자에 가깝다. 그의 진가는 스트라이크와 볼을 구분하는 선구안(batting eye)을 보면 알 수 있다. 안타와 볼넷이 두루 많은 그는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출루율 1위에 올랐고, 올해도 선두(0.477·6일 현재)를 달리고 있다. 스타들은 공격적 성향이 강해 볼넷을 달갑게 여기지 않지만 김태균은 볼넷을 안타만큼 좋아한다. 장효조·양준혁이 이런 유형의 타자였다. 장효조 뒤에 이만수, 양준혁 뒤에 이승엽이 있었지만, 김태균 뒤엔 강한 타자가 없었다는 게 다르다.

 김태균의 스윙은 장타(長打)보다 정타(正打)를 위한 메커니즘이다. 타격폼은 크게 ‘웨이트 시프트 시스템(중심이동)’과 ‘로테이셔널 히팅 시스템(허리회전)’으로 나뉜다. 홈런타자들은 체중을 뒤에서 앞으로 이동하며 타격한다. 히팅 포인트가 앞에 있어 장타생산에 유리하다. 반면 변화구엔 약하다. 교타자들은 허리회전을 이용해 친다. 김태균이 전형적인 로테이셔널 히터다. 중심발은 물론 이동발(오른발)까지 땅에 붙여 놓고 치기 때문에 몸의 움직임이 적다. 정확한 타격에 알맞은 폼이다.

 이순철 해설위원은 “김태균의 히팅포인트는 웬만한 1번타자보다도 뒤에 있다. 공을 끝까지 보고 때리니 정확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김태균이 2012년 올스타 홈런더비에서 우승하자 한 외국인 투수는 “놀랄 일이 아니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더 많은 홈런을 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김태균은 스트라이크존 앞에서 공을 때리기도 하지만 존을 통과한 공도 때려내는 타자”라고 말한 바 있다.

 김태균을 홈런수로 평가하는 건 매우 단편적이다. 이용규·정근우 등 테이블세터가 살아나고, 이성열·김경언 등이 뒤를 받치자 김태균의 진가가 드러나고 있다. 5월 오른 허벅지 부상을 입어 다른 타자들보다 100타석 정도 덜 나오고도 김태균은 홈런 9위(16개), 타점 공동 3위(68개)에 올랐다. 다른 기록은 더욱 놀랍다. 타자의 종합능력을 판단하는 OPS(출루율+장타율)는 NC 테임즈(1.176)에 이어 2위(1.130), 클러치히팅을 측정하는 득점권 타율도 NC 박민우(0.432)에 이어 2위(0.412)다. 그는 외부 평가와 상관 없이 일관된, 자신에게 최적화된 스윙을 했다. 전·현직 한화 사령탑인 김인식(2006~09년)·김응용(2013~14년)·김성근(2015년~) 감독이 김태균에게 “살 좀 빼라”고 잔소리는 해도 스윙을 바꾸라고 한 적은 없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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