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주주들 만나 삼성물산 합병 돌파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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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이재용(47) 삼성전자 부회장이 주주와의 대화를 비롯해 외국인 투자자 설득 등 신(新) 삼성물산 대주주로서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장기 전략을 설정했다.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합병 반대에도 불구하고, 최근 삼성물산 자사주 전량(5.76%)을 사들인 KCC를 ‘백기사’로 영입함에 따라 다음달 17일 열리는 임시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가결될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는 판단에서다.

 삼성 관계자는 14일 “임시주총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지만 엘리엇과의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될 것을 염두에 두고 대응책을 수립했다”며 “합병이 성사되면 이재용 부회장이 대주주 자격으로서 직접 외국인 주주를 포함해 주주와의 대화를 확대하고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을 병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의 합병이 계획된 비율(1대 0.35)로 이뤄지면 이 부회장의 지분은 16.5%로 1대 주주 자리에 오른다.삼성물산으로부터 자사주를 전량 매입한 KCC(8.9%)와 이부진(45) 호텔신라 사장,이서현(42) 제일기획 경영전략담당 사장 등 오너 일가의 지분은 각각 5.5%가 된다. 와병 중인 이건희(73) 삼성전자 회장의 지분은 2.9%다. 합병 후 삼성의 우호지분은 46.7%에 달하는 반면, 엘리엇의 지분은 2.05%에 그칠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회장이 직접 주주와의 소통에 나서기로 한 것은 이번 합병 건이 그룹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중요 분기점인 데다,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최근 본격적인 대외행보에 나선 이재용 부회장의 리더십이 시장의 평가를 받게 될 첫번째 ‘위기’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물산 지분이 전무한 이 부회장이 지금 외국 투자자 설득에 나서면 합병 명분이 ‘양사 시너지 효과’가 아닌 ‘오너의 지배력 확대’라는 설득에 힘을 싣게 돼 법정에서도 불리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합병 후엔 통합사 대주주로 외국인 투자자를 끌어안을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돼 이같은 전략을 수립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삼성은 특히 엘리엇이 장기간에 걸쳐 삼성전자를 비롯, 삼성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준비한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삼성 미래전략실 관계자는 “지난해 말까지 삼성물산 주주명부에 없던 엘리엇은 올들어 3%를 사면서 주식 매집에 들어가 최근까지 7%대로 지분을 확대했다”면서 “지난해에 국내 상법의 맹점을 파악하는 용역보고서를 발주하는 등 준비를 철저히 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행동주의’를 앞세운 외국 헤지펀드들의 움직임이 과거와 달라진 점도 삼성의 장기 전략 수립에 영향을 미쳤다. 단순히 주식을 매집해 주가가 오르면 이익을 실현하는 ‘먹튀’방식이 아니라 장기간 영향력을 행사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중간배당과 현물배당 등을 통해 이익실현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합병이 성사되도 엘리엇은 주식을 매각하지 않고 통합사의 최고경영자(CEO) 교체나 이사선임권한 요청 등을 통해 경영간섭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엘리엇은 주가를 띄워 큰 돈을 벌고 나가려는 벌처(vulture)펀드”라며“헤지펀드들이 한국 시장에 들어와 지배구조 문제를 공격하면 언제든 돈을 벌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연기금이나 자산운용사 같은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현망한 판단을 해야 하며 삼성도 주주친화적인 정책을 내놓는 식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현예·정선언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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