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느릿느릿 벌써 8승 … 여우 같은 곰, 유희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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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유희관은 활발한 성격과 거침없는 입담으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마운드 위에서 신나게 공을 던지는 그는 올 시즌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달 10일 잠실 한화전에서 완봉승을 거두고 환하게 웃는 유희관. [사진 두산 베어스]

지난 9일 서울 잠실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과 LG의 경기.

 2회 말 연속 3안타를 맞고 무사 만루 위기에 몰린 두산 왼손 투수 유희관(29)은 멋쩍은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한용덕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가자 눈빛이 달라졌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선 양석환-유강남-황목치승을 모두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그가 던진 가장 빠른 공은 시속 133㎞. 강속구가 아닌데도 LG 타자들은 속절없이 방망이를 헛돌렸다. 이날 유희관은 5와3분의2이닝 동안 6피안타·1실점을 기록해 시즌 8승째를 거뒀다. 피가로(삼성)와 함께 다승 공동 1위다.

 힘을 짜내 던져도 최고 시속 136㎞를 넘지 않았던 유희관의 직구는 올해 더 느려졌다. 시즌 최고 구속은 133㎞다. 그러나 구속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완급 조절에 경험이 더해지면서 유희관은 공략하기 점점 어려운 투수로 진화하고 있다. 유희관은 올 시즌 12경기에 선발로 나와 8승(공동 1위)2패 평균자책점 3.15(3위)를 기록 중이다. 국가대표 왼손 에이스 KIA 양현종(6승2패 평균자책점 1.58), SK 김광현(7승1패 평균자책점 3.97)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기록이다.

 야구를 시작한 뒤 아직까지 큰 부상이 없을 정도로 유연성을 타고난 그는 올 시즌 경기당 평균 106개의 공을 던져 국내 선수들 가운데 양현종(85와3분의2이닝)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80이닝을 책임졌다. 유희관은 허약한 불펜진 때문에 고민하는 두산 마운드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지난달 10일 잠실 한화전에서는 생애 첫 완봉승도 거뒀다.

 2008년 중앙대를 졸업하고 6라운드(전체 42번)로 두산에 지명된 유희관은 팬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느린 구속으로 한계가 있다’는 선입견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입단 첫해 16경기에 나온 그는 이듬해 5경기에 출전한 뒤 상무 야구단에 입대했다. 상무에서 기량이 부쩍 좋아진 그는 2013년 불펜과 선발을 오가며 10승을 거뒀다. 지난해에는 12승으로 한 단계 더 성장했다.

 유희관은 지난해까지 왼손 타자에게 유독 약했다. 지난해 왼손 타자 피안타율은 0.337로 오른손 타자(0.259)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왼손 타자는 왼손 투수에 약하다’는 야구계 속설과는 정반대였다.

 유희관은 이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2013 시즌을 마친 뒤 포크볼을 연마했다. 그러나 포크볼을 실전용으로 만들진 못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체인지업을 집중 연마했다. 이게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2013년까지 두산 감독을 맡았던 김진욱 스카이스포츠 해설위원은 “왼손 타자를 상대로 던지는 바깥쪽 체인지업에 자신감을 갖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유희관은 “달라진 게 있다면 마운드에서 여유와 요령을 찾은 것이다. 나름대로 강약 조절을 하고 있다”고 했다.

 스피드가 느려 언젠가는 한계를 맞을 거라는 일부의 우려도 깨뜨렸다. 김 위원은 “유희관은 워낙 똑똑하다. 경기 중에도 상황을 파악해 투구 패턴을 바꾸는 선수다. 앞으로 더 좋은 성적을 올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유희관은 유쾌한 성격과 거침없는 입담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아직 올스타전 출전 경험이 없는 유희관은 올 시즌 ‘드림 올스타(두산·삼성·롯데·SK·kt)’ 선발 투수 후보에 올랐다. 그는 “팬 투표가 안 된다면 감독 추천 선수로라도 올스타전에 꼭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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