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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낙타도 없는데 메르스 세계 2위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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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논설실장

낙타도 없는 한국이 메르스 세계 2위에 올랐다. 능력도 안 되는 정부가 정보만 틀어쥐고 꽁꽁 숨긴 결과다. 바이러스 잡으랬더니 괴담만 때려잡았다. 박근혜 대통령부터 뒷북치기는 마찬가지다. 노무현 정부의 성공적인 사스 방어에 굴욕당하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메르스 주도권을 넘본 것에 자극받은 것일까? 뒤늦게 박 대통령은 메르스 현장을 찾고 병원 명단을 공개하는 초강수로 전환했다. 혹 ‘질투가 나의 힘’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메르스는 남의 일이 아니다. 일주일 전 다른 일로 삼성서울병원에서 4시간 머물렀기 때문이다. 솔직히 좀 쫄았다. SNS 괴담대로 비타민약까지 한 움큼 삼켰다. 그래도 겁이 나 메르스의 진실이 궁금해졌다. 이미 정부와 국내 전문가에겐 신뢰를 접은 지 오래다. 사대주의라 비난받아도, 믿을 건 해외 전문가들의 과학적 연구 결과뿐이다. 다음은 지난 주말 내내 네이처·사이언스지의 논문들,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통제센터(CDC) 홈페이지를 뒤져본 뒤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다.

 ①메르스는 신종 바이러스인가=아니다. 20년 전의 낙타 혈액에서도,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낙타의 75%에도 항체가 발견됐다. 사우디인 1만 명 중 15명에게도 항체가 검출됐다(메르스에 걸린 적 있다는 뜻). 낙타 도살장 인부들의 항체 검출 빈도는 평균보다 23배나 높았다. 그동안 많은 사우디인들이 메르스에 걸렸지만 단순 감기로 알고 넘어간 것이다.

 ②정말 치명적일까=감기 원인인 코로나바이러스는 상(上)기도, 즉 코~목구멍을 감염시켜 경증 호흡기증상으로 끝난다. 낙타도 메르스가 상기도만 감염시켜 가벼운 호흡기 증상에 머문다. 낙타에게 치명적인 메르스였다면 낙타는 벌써 멸종됐을 것이다. 문제는 메르스가 사람에게 전파되면 하(下)기도, 즉 기관지와 폐 깊숙이 파고들어 중증호흡기 증상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어떻게 낙타에서 인간으로 전파됐는지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 다만 면역력이 엄청 떨어지거나 심각한 중병의 기저질환자를 제외하면 치사율 40%는 과장된 수치다.

 ③쉽게 전염되나=WHO와 CDC는 메르스를 ‘낮은 전염성, 위험한 질환’으로 공식 분류한다. 네이처와 사이언스도 “인간끼리 전파는 매우 힘들다”고 보도했다. 잠복기에는 전염이 안 되고, 바이러스가 폐 깊숙이 서식하기에 잘 튀어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웃사촌인 사스 바이러스도 폐에 공기를 불어넣는 인공 삽관 과정에서 확산됐다. 메르스는 병원 내 감염이 75%나 되고, 여전히 전염경로도 ‘밀접 접촉’이란 게 공인된 학설이다.

 ④공기로 전파될까=국제 의학계는 비말(飛沫=침방울) 전파라는 공식 견해를 지지한다. 다만 재채기를 통한 미세 에어로졸로 전염될지 모른다는 소수 의견도 있다. 메르스는 충분히 연구되지 못한 병이다. 그러나 유전자 분석에서 바이러스 변이는 없음이 확인됐다. 사이언스도 “주로 병원에서 폐에 있는 바이러스가 튀어나올 만큼 심각한 기침을 해야 비말로 전파된다”며 공기 전염을 부정하는 입장이다.

 ⑤왜 백신이 없나=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전염력이 강해 큰 시장이 형성됐다면 벌써 백신이 나왔을 것이다. 치명적인 에볼라 백신이 여태 안 나온 것도 같은 이유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비누칠만 해도 껍질이 벗겨져 죽고, 마스크만 써도 안전하다는 게 CDC의 공식 입장이다.

 메르스도 아는 것만큼 보인다. 위의 다섯 가지 과학적 결론을 믿든 안 믿든 자유다. 당연히 안심할 수 있을 때까지 안심해선 안 된다. 하지만 쓸데없는 공포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면역력만 떨어진다. 참고로 2002년 사스 사태를 되짚어보자. 강력한 방역 덕분에 2년 만에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반짝 열을 올리던 사스 백신 개발도 시들해졌다. 이제 메르스도 모든 정보가 공개되고 우리 사회의 방역기제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정부만 정신차리면 된다. 나는 우리 의료진의 수준을 믿고, 개인적으로 메르스를 이긴다에 한 표 던지고 싶다.

이철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