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레버쿠젠 제1 시민은 바이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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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라인강에서 바라본 레버쿠젠의 바이엘 공장 전경. 세계적인 제약업체 바이엘은 매년 1조2000억원을 들여 라인강에 유입되는 하수를 정화한다. [블룸버그]

독일 레버쿠젠 라인강 변에 위치한 바이랩(BayLab)엔 매일 오후 30명의 초·중·고 학생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온다. 하얀 실험복을 입고 고글을 낀 학생들은 음식 속의 비타민 C 수치를 측정하고 샬레에 효모를 떨어뜨려 직접 배양한다. 아스피린 제약사인 바이엘이 청소년을 위해 만든 무료 과학체험관 바이랩은 1998년 설립 후 학생 5만여 명이 다녀갔다.

 성인들을 위해선 연간 100차례가 넘는 수준 높은 공연과 26개 스포츠클럽 5만여 명을 지원하며 지역 주민의 화합을 이끈다. 바이엘 후원 선수가 따낸 올림픽 메달만 64개, 세계 챔피언 메달만 200개가 넘는다. 손흥민이 활약 중인 축구 클럽 바이엘 레버쿠젠은 분데스리가 최고의 클럽으로 성장했다. 바이엘은 2014년도 연차 보고서에서 “바이엘은 스스로를 시민 사회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사회 공헌은 우리에 대한 평가에서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밝혔다.

 특히 바이엘은 도시에서 라인강으로 이어지는 하수관에 특수시설을 설치해 레버쿠젠에서 발생하는 모든 하수를 정화하고 있다. 시설 유지 비용으로 매년 10억 유로(약 1조2000억원)를 지출한다. 마진 데커스 회장은 홈페이지에서 “혁신과 지속가능성은 바이엘 성공의 원동력”이라며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이유는 사회적 책임과 경제적 필요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바이엘은 설립 후 150여 년 동안 주민과 함께 지역 발전을 이끌어오며 ‘레버쿠젠 제1의 시민’이란 별칭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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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엘처럼 단순한 봉사와 기부 등 이벤트 중심의 시혜성 사회공헌을 넘어 사회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는 ‘기업시민’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기업도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의 일원이기 때문에 사회문제에 참여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본지는 이 같은 기업시민의 현주소를 살펴보기 위해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와 국가별 기업시민지수를 공동 개발했다. 기업의 사회적 실천과 윤리성 등 6개 지표를 사용했다. 한국은 22개국 중 21위였다. 1위는 스위스, 2·3위는 핀란드와 덴마크였다.

이어 스웨덴, 노르웨이, 네덜란드, 독일 등 북유럽과 주변 국가들이 톱7을 형성했다. 아시아에선 싱가포르(9위)와 일본(12위)이 선전했다. 반면 한국은 브라질(17위), 중국(19위)보다 낮았다.

 줄리아 길라드 전 호주 총리는 지난 18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사회 문제는 거버넌스만으론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기업도 시민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요즘 사람들은 단순히 제품의 쓰임새만 보고 소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믿고 생각하는 것이 브랜드에 담겨 있길 바란다”며 “기업시민으로서 철학과 가치를 갖는 것이 꼭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서울대 김의영 한국정치연구소장은 “참여와 실천을 통해 사회 문제를 적극 해결하는 것도 기업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자본주의의 창시자인 애덤 스미스도 『도덕감정론』이란 책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기 위해선 구성원들의 사회적 책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며 “기업도 시민인 이유”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윤석만(팀장)·유성운·정종훈·임지수·백민경 기자, 김의영·미우라 히로키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교수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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