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머런 보수당 단독 과반 … 스코틀랜드는 좌파 SNP 석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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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현지시간) 영국 총선에서 완승을 거둔 보수당 대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오른쪽)가 부인 서맨사 여사와 함께 승리 축하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당사에 도착해 엄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캐머런 총리는 당초 초박빙이 예상됐던 이번 선거에서 자신이 이끄는 보수당이 압승하며 재집권에 성공했다. [런던 AP=뉴시스]

총선일인 7일 오후 10시 투표를 마칠 때만 해도 영국인들은 보수당과 노동당의 초박빙 승부를 예상했다.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도, 노동당의 에드 밀리밴드 당수도 집권 가능하다고 여겼다. 여론조사기관 11곳의 이구동성 전망이었다.

 오후 10시 영국 BBC 등 주요 방송사 출구조사가 나온 뒤엔 경악했다. 보수당이 316석, 노동당이 239석이었다. 누가 봐도 보수당의 완승이었다. BBC의 앤드루 마 기자는 “여론조사기관이 그간 못 잡아낸 게 있거나 지난 24시간 동안 보수당 쪽으로 엄청난 지지 이동이 있었다는 얘기”라고 해석했다.

 개표가 끝나자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보수당이 전체 650석 중 과반(326석)을 넘긴 331석을 차지해서다. 여론조사에선 드러나지 않던 ‘수줍은 보수당 지지자들(shy Tory·샤이 토리)’이 위력을 보여준 것이다. 노동당은 232석으로 찌그러졌다.

 다만 스코틀랜드에선 예상대로였다. 스코틀랜드 민족주의 광풍이 거세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이 59석 중 56석을 휩쓸었다. 2010년 41석을 차지했던 노동당은 1석에 그쳤다. 스코틀랜드에 지역구를 둔 거물 노동당 정치인들이 낙엽처럼 스러져갔다. 노동당의 선거본부장인 더글러스 알렉산더도 스무 살의 글래스고대 여대생에게 완패했다.

 밀리밴드 당수는 “노동당에 매우 실망스러운 밤”이라며 “오늘 영국의 다른 지역에서, 특히 스코틀랜드에서 발생한 현상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고 토로했다. 그는 1987년 이후 최악의 성적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날 사퇴했다. 보수당의 연정 파트너였으나 참패(57석→8석)한 자유민주당의 닉 클레그 당수도, 낙선한 영국독립당(UKIP)의 나이절 패라지 당수도 물러났다.

선거를 종합하면 스코틀랜드는 좌파 성향의 SNP로 대거 이동했다. 반면 나머지 영국, 특히 잉글랜드는 오른쪽인 보수당으로 움직였다. 더 오른쪽으로 분류되는 영국독립당의 지지율도 크게 올랐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거리가 그 어느 때보다 멀어진 셈이다. 일각에선 “SNP의 약진에 잉글랜드 유권자들이 경계감을 가진 듯하다”는 설명이 나온다. 결과적으론 지난해 양측 간 거리가 스코틀랜드 독립 주민투표 때보다 더 멀어졌다.

 영국 내에서도 “캐머런 총리가 현 시스템의 영국 마지막 총리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캐머런 총리는 이를 의식한 듯 “이번 선거는 지난 5년 경제 성과를 유권자들이 인정한 것”이라면서도 “우리가 함께하길 원한다. 한 나라, 한 연합왕국 기조하에서 운영하겠다”고 다짐했다. 한동안 캐머런 총리의 우선 순위는 EU 문제가 아닌 연합왕국 유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Brexit) 변수까지 겹쳐 있다. 캐머런 총리는 EU와 재협상 이후 2017년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공약한 터다. 친EU 성향인 SNP의 니콜라 스터전 당수는 그럴 경우 스코틀랜드에서 다시 독립투표를 추진할 수 있다고 말해놓은 상태다. EU는 “EU 핵심 원칙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유럽에선 보수당의 재집권으로 브렉시트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우려한다.

한편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여론조사업계에선 “92년 이후 최대 이변”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6주간 선거운동 기간 내내 박빙 승부를 예고했었다. 선거 당일 노동당이 1%포인트 앞선다고 발표한 기관도 있었다. 92년 총선 때도 여론조사 에서 노동당의 신승을 예상했으나 막상 투표함을 열어보니 존 메이저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이 과반을 획득한 일이 있었다. 당시 BBC는 출구조사에서도 노동당이 승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샤이 토리(Shy Tory)=1990년대 일명 토리인 보수당이 여론조사보다 더 득표하곤 했던 현상을 가리킨다. 보수당 지지자들이 상대적으로 여론조사에 소극적으로 응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우리의 ‘숨은 표’ 현상과 유사하다. 92년 총선 때 특히 심했다. 이후 조사 방법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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