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청자 주발·접시 … 진열장서 식탁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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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강 청자연구소의 전통 기법과 현대 도예가 이윤신씨의 디자인이 만나 다시 태어난 고려 청자.

고려청자는 박물관 진열장에만 있어야 할까. 세계 도자사가 감탄하는 비색(翡色:푸른 빛깔)과 잘 빠진 형태는 전통 속에서 유물로만 찬양받아야 하는지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많다. 여러 도예가가 고려 청자 재현에 도전하는 까닭이다.

해강 청자연구소는 이런 노력에 앞장섰던 고 해강 유근형씨가 남긴 명소다. 1960년 고인과 함께 연구소를 세운 2대 해강 유광열(63)씨가 맥을 잇고 있다. 해강 청자연구소는 감상용 전통 공예품으로서의 청자를 만드는 데 멈추지 않는다. 지금 여기서 살아 숨 쉴 수 있는 청자의 재창조를 꾀한다.

현대 도예가 이윤신(47)씨와 해강 청자연구소의 만남은 이런 시도 가운데 하나다. 전통 고려 청자를 어떻게 재해석해 21세기 초 한국인과 세계인이 쓸 수 있는 그릇이자 예술품으로 만들 것인가 실험했다. 22일까지 서울 청담동 서미 앤 투스에서 열리는 '이윤신과 해강요'는 이 실험 결과를 선보이는 자리다. 청자를 일상에서 즐기고, 쓰고 싶어하는 이를 위해 진지한 재현 노력과 다양한 해석을 거친 현대판 청자를 내놓았다. 도예가 이윤신씨가 디자인하고 성형한 작품에 유광열씨가 상감 또는 조각해 구워낸 공동작업이다.

청자의 비색을 좋아하는 이에게 이번 전시에 나온 도자의 색감은 꽤 원형에 가까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밥상에 올리거나 손님 대접에 쓸 만한 주발과 접시, 다양한 형태의 그릇은 옛 맛에 충실하면서도 현대적인 멋을 풍긴다. 청자 표면을 장식한 연꽃, 국화, 구름 무늬의 상감 또한 요즈음 삶에 어울리는 문양으로 변주되었다. 도마 크기의 넓적한 받침을 기본으로 한 양식기나 큼직한 서구식 화병도 청자의 단아함과 은은한 향기를 받아 새롭게 보인다.

전통 도자 명장과 현대 도예가의 협동 작업이 고려 청자를 우리 곁에 한층 가깝게 만들었다. 진열장에서 식탁으로 내려온 고려 청자의 온기가 손끝에 따뜻하다. 02-511-7305.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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