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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취향인 건 압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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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세상이 바뀐 걸까, 내가 ‘꼰대’가 된 걸까. 잠시 고민했다. 요즘 장안의 화제인 가수 박진영의 노래 ‘어머님이 누구니’ 뮤직 비디오를 본 후다. 영상 속에서 남자는 헬스클럽 러닝머신에서 운동하는 여자의 몸매를 샅샅이 훑다 묻는다. “넌 허리가 몇이니?” “24요.” “힙은?” “34요.” 그리고 노래는 “허리는 너무 가는데 힙이 커 맞는 바지를 찾기 너무 힘든” 멋진 뒤태를 가진 여자에 대한 상찬으로 이어진다. 화면에는 여성의 힙이 계속 클로즈업. 보는 순간 불쾌함이 먼저였는데, 사람들은 재밌단다.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걸 주특기로 삼아온 박진영다운 노래란다.

 하긴 무뎌질 때도 됐다. 여자는 예뻐야 하고, 이런저런 여자가 바로 예쁜 여자라고 안내하는 예시는 널리고 널렸다. 지하철역에 커다랗게 붙어 있는 성형 후 얼굴 광고판을 보며 여자들이 속삭인다. “저건 너무 인공적이지 않니? 자연스럽게 고쳐야지.” TV에서는 눈에 띄는 외모가 아닌 여자들에게 “열심히 살아야 할 얼굴”이라 대놓고 놀리고, 예쁘지 않으면 무시당해 마땅하다는 내용의 코미디가 인기를 끈다. 발끈하면 ‘쿨하지 못한’ 사람이 된다. 세상은 원래 이런 곳이야. 몰랐어? 억울하면 노력해. 박진영의 노래는 거기에 ‘허리와 엉덩이의 비율이 유별난’ 여자가 섹시하더라는 또 하나의 ‘기준’을 더한 것뿐이다.

 그런데 정말 다들 아무렇지 않은가. 홍대 앞을 오가는 젊은 여성들을 보며 “신기하게 요즘 20대들은 다리가 다들 예쁘더라” 한 적이 있다. 대학원생 후배가 답했다. “언니 요즘 대학생들은 얼굴 성형보다 다리 성형에 더 관심이 많아요. 얼굴보다 몸매인 시대잖아.” 한국이 인구 대비 성형수술 건수 1위라는 건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실. 여대생 5명 중의 하나는 ‘취업을 위해 성형수술을 받을 의향이 있다’고 말한다. 세상이 그것을 원하니, 그 기준에 나를 맞춰야 한다는 강박. 거식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외모 얘기는 그만 좀 하자”고 말하지 못한다. ‘어머님이 누구니’의 가사처럼 “엄마에게 받은 타고난” 미녀가 아닌 자신을 탓할 뿐이다.

 웃자고 만든 노래에 정색한다 욕을 먹겠지만 말하고 싶다. 그의 취향이 “뒤에서 바라보면 미치겠는” 여자인 것은 알겠는데, TV로 라디오로까지 그걸 반복해 들어야 하는 건 불편하다. 이 노래를 흥얼거리던 그녀들이 줄자로 자신의 허리와 엉덩이 사이즈를 재며 ‘24/34’가 아니라 실망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서다.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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