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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인양해야 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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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공교롭게도 16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서 정부의 최종 결정까지 걸린 시간이다. 대통령은 지난 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결론이 나면… 선체 인양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양수산부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발표했고 대통령은 16일 진도 팽목항에서 “필요한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서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라고 못을 박았다. 22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심의는 통과의례일 뿐이었다. 이제 세월호는 기술적 실패라는 불상사가 없는 한 물 위로 올려진다.

 나는 세월호 인양에 찬성하지 않았다. 정부가 실종자 가족의 동의만 이끌어 낼 수 있다면 그대로 두는 게 옳다고 믿었다. ‘인양의 필요성’에 동감하지 않았다. 인양 문제에 대한 기사(중앙SUNDAY 2014년 6월 8일자)를 쓰는 과정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대부분 인양에 회의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그 비용으로 해상 추모공원을 만드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았다. 1994년 발트해에서 침몰한 MS에스토니아호나 제2차 세계대전 때 폭침당한 미국 전함 USS 애리조나호처럼 침몰 해역에 존치하는 경우가 꽤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MS에스토니아호에는 700여 명의 실종자가 있었다.

 그런데 지난 2일 생각이 달라졌다. 세월호를 인양해야 한다 또는 인양할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열린 세월호 유가족 기자회견장에서였다. 52명의 유가족이 삭발한 그날이다. 가족들은 세상에 대한 원망을 표출했다. 정부·국회·언론을 향한 거친 언사도 있었다. 그들의 울분이 이해가 됐다. 본지 여론조사에서 62.3%의 응답자가 인양에 찬성했다. 그중에는 “인양을 꼭 해야 하느냐”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나 같은 이도 많을 것으로 짐작됐다.

 세월호 인양에 대한 기술적 검토에 열 달이 걸렸다. 치밀한 작업 때문에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보기 어렵다.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는 아직 정상적인 활동을 시작하지 못했다. 시간은 그렇게 허무하게 흘러갔고, 세월호 인양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실종됐다. 해수부의 당초 계획에는 ‘공론화’라는 것이 들어 있었으나 시도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그 결과 ‘어명(御命)’에 따라 결정되는 일이 되고 말았다.

 어쩌면 세월호는 인양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 앞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세월호를 인양해야 한다.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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