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거짓 해명으로 제 발등 찍은 이완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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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공개 석상에서 옆 사람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미소를? 이런 건 친밀한 사람들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영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이완구 총리를 보면 가깝지 않아도 그럴 수 있는가 보다.

 하긴, 친밀함이란 매우 주관적이기 때문에 상대편이 아니라면 아닌 거다.

 오래전에 누군가 내게 물었다.

 “드라마 작가 P씨랑 친하세요?” 대답을 한참이나 망설였다.

 히트시킨 드라마가 서너 편. 그 당시 잘나가던 방송작가다. 만나는 사람마다, 특히 불쌍한 사람에게는 밥도 잘 사주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다. 이프 잡지 인터뷰를 계기로 만나 우리도 ‘가난한 여성단체’에 해당됐던지 전 직원(그래 봐야 10명)이 고기랑 밥이랑 술·노래방까지 풀코스로 여러 번 대접도 받았고, 가끔 회식비라며 격려금도 보내 줬다.

 수입이 좋아서인지 성격이 좋은 건지 아니면 무슨 필요 때문인지. 마당발로 돈 쓸 곳을 찾아다니며 베풀던 그녀. 강이 보이는 그녀 작업실도 가 봤지만 생각해 보니 그녀와 난 결코 친한 사이는 아니다. 결국 “친하진 않고 만난 적만 있다”고 대답했다.

 친한 사이란 어떻게 만들어지나. 대상을 넓게 잡고 공들여 봤자 다 ‘헛삽질’이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명절 때마다 500명이 넘는 사람에게 선물을 돌리고 (정치) 성향이 같건 다르건, 마음이 맞건 안 맞건, 여당 야당, 동향 사람 타향 사람 닥치는 대로 죄다 찾아다니며 챙겼단다. 챙긴 상대가 명절 선물 명단대로 수백 명이라면 그들 중에서 “난 친한 사이다” 하고 선뜻 나설 사람이 있을까.

 ‘그 사람이 원래 주는 걸 좋아해 내가 받았을 뿐 그를 챙길 의무도, 또 안 챙겨도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여기며, 그들 모두가 ‘난 그저 n분의 1의 존재’라 생각했으리라.

 그나저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돈 갖다 바치고 줄 서고 국회의원 되고. 이런 비틀어진 방법이 ‘친밀한 관계 만들기’라 여기고 신뢰와 의리를 기대했던 성 전 회장의 대책 없는 순진함도 놀랍지만 선거 때는 비타민(?)으로 살뜰하게 챙기고, 책을 내면 책값도 듬뿍 주고, 총리 낙방될까 봐 동네방네 몇천만원 들여 현수막을 걸어 주고, 호텔 행사 때마다 달려가 후원해 주고, 가족이랑 나란히 사진도 찍고, 이런 대접을 당당하게 받고서도 “친한 사이가 아니라 그저 같이 국회의원을 했을 뿐”이라 대꾸한 이 총리의 뻔뻔함도 참으로 황당하다. 고인이 된 성 전 회장이 어지간히 서운하긴 했겠다.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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