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계약직 연구교수에 논문대필 ‘갑질’ 교수에 집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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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의 논문대필 관행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 장준현)는 계약직인 연구교수에게 논문대필을 시킨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 두 명에게 각기 징역 6월과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1일 밝혔다.

이 대학 체육학과 김모(46) 교수는 2009년 10월께 같은 대학 축구부 감독 김모(48)씨에게 ‘제약회사 연구프로젝트와 관련해 신약의 효능을 실험해야 하니 축구부 선수들을 실험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김 감독은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논문을 써달라고 요구했다. 김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 계약직 연구교수 박모씨에게 논문을 작성하게 했다. 완성된 논문은 김 감독에게 전달됐다.

박씨에게 논문대필을 지시한 이는 김 교수뿐만이 아니었다. 이 대학 체육대학원 부원장인 노모(49)씨도 논문대필을 지시했다. 노씨는 대학교수 지원에 필요한 논문점수를 확보해야 한다는 지인의 부탁을 받고 박씨에게 논문을 대필하게 했다. 이 대학 체육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최모(58)씨의 학위논문도 대필하도록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교수로서 누구보다 엄정하고 공정하게 학사 업무를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연구교수로 하여금 타인의 학회논문이나 학위논문을 대신 작성하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친분관계로 범행에 이르렀을 뿐 개인적 이득을 취했다고 보이지 않고, 동료 교수와 제자들이 선처를 탄원하는 점을 고려했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한 배경을 설명했다.
피고인들에게 논문 대필을 부탁했던 축구부 감독 등에게는 벌금 300만∼500만원을 선고됐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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