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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예우 대책, 법조계 모두 함께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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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민제 기자 중앙일보 IT산업부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박민제
사회부문 기자

“망신주고 면박주는 건 정말 쉽다. 그런데 그것으로 해결되겠나.”

 대한변호사협회가 차한성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신고서를 반려한 이후 만난 변호사 A씨(47)는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대한변협이 “퇴임 대법관은 개업하지 말아야 한다”며 의욕적으로 ‘전관예우 타파’에 나섰지만 반응은 차가웠다. 평소 전관의 폐해에 열변을 토하던 그였지만 이번엔 “대체 변협의 저의가 뭐냐”고 반문했다.

 이런 반응은 일부 변호사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변협이 연일 공식 성명을 내고 드라이브를 걸지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자만 대법관 되라는 거냐”부터 “특정인에 대한 여론재판이다” “윤리 문제를 의무사항으로 바꾸고 있다”까지 비판이 이어진다. 급기야 지난 26일에는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변협에서 반환하라고 한 차 전 대법관의 개업 신고서에 문제가 없다며 돌려보내는 불협화음까지 연출됐다. 일부는 “하창우 변협 회장이 서울변회 회장 재직 당시 백수십 건의 사건을 수임하지 않았느냐”는 말까지 나오자 법조 3륜 간 이전투구를 걱정하는 눈치다.

 왜 옳은 얘기를 하는데 반응이 싸늘할까. 무엇보다 법률가 단체인 변협의 ‘초법적’ 권한 행사에 거부감이 크다. 개업 신고를 막는 명시적 규정이 없는데도 변협은 규칙을 확대 해석해 적용했다. 이번 사안이 인정되면 앞으로도 회장의 ‘개인적 소신’에 따라 변호사 개업 등 개인의 기본권이 자의적으로 침해될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 사태의 주범 격인 전관 출신 현직 변호사들은 놔두고 특정인만 거론하고 있다. 같은 이유라면 변호사 단체 고위직을 지낸 이들은 퇴임 후 변호사로 활동해도 되는지 의문이다.

 전관예우는 법조계의 고질병이다. 반드시 없어져야 할 폐해지만 수십 년간 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만큼 없애기 어렵다는 뜻이고, 뒤집어 보면 정교한 제도적 대안이 요구된다는 의미다. 50~60대 초반의 고위 전관들이 다수 배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부터 전관들이 가진 경험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대책까지 법조 3륜이 머리를 맞대고 종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지금처럼 특정인의 도덕적 문제로 돌리고 개업하지 말라고 윽박질러 될 일이 아니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일반 여론은 법조계 내부 여론보다는 호의적이다. 그렇다고 이 방식이 전관예우 문제의 ‘해법’이 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최근 대한변협은 이른바 ‘김영란법’에 대한 위헌 소원을 내면서 “여론의 지지가 높다고 위헌이 합헌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옳은 지적이다. 이는 이번 사안에도 반드시 적용돼야 할 원칙이다.

박민제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