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일본 경영계가 꼬집은 한국의 '조기 퇴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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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27일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들이 크게 당황했다. 일본 경제단체 관계자의 질문을 받고서다. 이날 오전 국제노동기구(ILO) 일본 측 대표단이 경총을 찾았다. 대표단은 일본 경총인 게이단렌(經團連)과 일본 노총인 렌고(連合) 관계자들로 구성됐다.

 이 자리에서 게이단렌 관계자는 “한국에선 52세에 거의 물러난다고 하는데 맞느냐”고 물었다. 실 퇴직연령이 52~53세라는 국제기구에 보고된 한국 정부의 고용 자료를 근거로 한 질문이었다. 그는 “52세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다. 기업 입장에선 핵심 중의 핵심일 텐데 그런 사람이 다 나가고도 기업이 운영되느냐”고 물었다.

 일본 경영진의 생각으론 50대야말로 업무의 완숙기로 회사에 가장 크게 기여할 근로자다. 30대 숙련 과정과 40대의 업무집행과정을 거쳐 50대에는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와 검증된 업무능력을 바탕으로 조직을 창조적으로 지휘하고 빼어난 지혜를 발휘할 시기다. 후배를 가르치고 업무의 방향을 잡아주는 것도 50대의 몫이다. 그런 사람이 모두 나이를 기준으로 퇴출되는 게 일본 경영진 입장에선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구조조정이나 정년이 생산성이나 능력이 제대로 검증된 상태에서 정해지고 집행되느냐”는 기업 인력운용에 관한 원초적 질문을 던진 셈이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경총 관계자들이 상당히 진땀을 뺐다는 후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에는 환갑(61세)이면 쉴 나이라는 관습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농업이나 노동집약적인 육체노동 시대에 형성된 관념이다. 물론 대접한다는 좋은 뜻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수명이 늘어나고 지식노동이 주를 이루는 시대엔 맞지 않다. 우리 기업들은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며 글로벌 경쟁을 이겨냈다. 그런데 인력 운용만큼은 아직까지 이런 관습에 얽매여 있지는 않은지 일본 경제단체 관계자가 일깨워준 셈이다.

 그렇다고 저(低)성과자까지 감싸려는 것은 아니다. 한 바구니에 썩은 사과까지 섞어놓으면 기업이나 근로자 모두 힘들어진다. 더욱이 고연봉의 장년 저성과자라면 더 그렇다. 그래도 나이를 기준으로 삼아 50대를 한꺼번에 퇴출시키는 기업 관행은 고용시장의 건전성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해 금융권을 비롯한 상당수 기업이 나이에 따라 일률적으로 구조조정하고 올해 대규모 신규 채용을 하는 이율배반적 인력 운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모 방송사의 싱글중년 친구찾기 프로그램 출연자들의 평균 나이도 52세다. 그들을 두고 늙었다거나 이젠 쉴 나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이가 근로의 족쇄가 되는 관행을 기업이 먼저 깨는 것도 노동시장 구조개혁 아닐까.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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