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일으킨 히로히토 생일날 … 아베, 미 의회 연설 택일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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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아베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4월 29일 미 의회에서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한다. 존 베이너 미 하원의장이 초청해 이뤄진 행사다. 공교롭게도 다음달 29일은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히로히토(裕仁·1901∼89년·사진) 일왕의 생일을 기념하는 ‘쇼와(昭和)의 날’이어서 벌써부터 논란이 일고 있다. 아베 1차 내각 때인 2007년 4월부터 일본 정부는 이 날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4월 29일은 또 미국 등 2차 세계대전 연합군이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에 대해 전후 배상 책임을 사실상 면제해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51년 9월8일 체결)이 공식 발효된 일본의 ‘주권 회복 기념일’(28일) 하루 뒤라는 의미도 있다.

실제로 아베 총리는 2013년 히로히토의 아들인 아키히토(明仁) 현 일왕이 참석한 가운데 도쿄 시내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주권 회복 및 국제사회 복귀 기념식’에서 만세를 불러 논란을 일으킨 일이 있다. 일본은 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담판을 비롯해 그동안 기회있을 때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내세워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부정했고, 이 때문에 한국·중국 등 주변국들과 마찰을 빚어왔다. 이처럼 아베 총리의 미 의회 합동 연설 택일(擇日)에는 일본 측의 복합적인 계산이 담겨있는 것으로 확인돼 정부·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 소식통은 “아베 총리의 상·하원 합동 연설을 막지 못한 것은 우리 정부가 워싱턴에서 벌인 대미 외교 1차 저지선이 무너진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아베의 연설문에 분명한 사과와 반성 메시지가 담기도록 한·미가 일본을 상대로 물밑 외교 공조를 펼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전 외교부 동북아국장)는 “일본은 샌프란시스코조약을 체결하면서 도쿄재판(2차 대전의 A급 전범 5명을 교수형에 처한 재판)을 수용한다고 천명했다”며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일본 총리가 참배하면 미국이 일본에 제시한 최저선을 넘는 것이란 의미를 이번 기회에 미국이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세정 기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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