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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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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19일 아침 코스피지수는 단숨에 2040선을 뚫었다. 이후 약간 주춤하며 0.47% 오른 2037.89로 마감했지만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수퍼 달러’ 회오리에 곤두박질했던 원화 값도 반등해 전날보다 12.70원 오른 1117.20원으로 마감했다. 이날 일본(-0.35%)을 제외한 주요 아시아국 증시도 일제히 올랐다. 앞서 미국 다우존스지수도 1.27% 급등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결정기구인 공개시장위원회(FOMC)의 발표에 전 세계 금융시장이 환호했다. Fed가 조기에 금리를 올릴지 모른다는 공포에 짓눌렸던 국제 금융시장은 18일(현지시간) 재닛 옐런(사진) Fed 의장의 한마디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FOMC는 지난해 12월 이후 성명서에서 ‘(기준금리 인상 전까지) 인내심을 발휘한다(be patient)’는 문구를 넣어 왔다. 그러면서 FOMC는 ‘인내심’이란 단어를 “최소한 향후 두 차례 FOMC 회의 때까진 금리를 올리지 않을 것”이란 의미로 풀이했다. 1월 성명에도 ‘인내심’ 문구가 살아 있자 월가에선 3월과 4월 FOMC 회의를 건너뛴 뒤 6월 회의 때 금리를 올리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확산했다. 이 예상을 뒷받침할 바로미터는 3월 FOMC 성명서에서 과연 ‘인내심’이란 문구가 빠질 것이냐 여부였다. 인내심 문구가 사라진다면 6월 인상 가능성은 현실이 된다. Fed가 금리 인상에 걸어둔 빗장을 모두 여는 셈이기 때문이다.

 뚜껑을 연 결과 FOMC는 시장의 예상대로 ‘인내심’ 문구를 삭제했다. 그러나 FOMC는 곧바로 단서를 달았다. “노동시장이 더 개선되고 인플레이션이 2% 목표치를 향해 근접한다는 합리적 확신이 생길 때(reasonably confident)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 했다. ‘인내심’이란 문구를 삭제하긴 했지만 앞으로도 상당 기간은 ‘인내심을 발휘하겠다’는 뜻이다. 이어 옐런 의장도 “인내심 문구를 없앴다고 해서 (금리 인상에) 조바심을 낸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뒷받침했다. 채현기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Fed는 ‘인내심’ 문구를 삭제하면서 통화정책 정상화의 첫 단추를 꿰었지만 경제성장률과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하향 조정해 금리인상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비둘기파적 성향을 내비쳤다”며 “Fed의 금리 인상 시점을 6월보다 9월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공포영화를 볼 때 가장 무서운 순간은 뭔가 나올 것 같은데 아직 그게 뭔지 모를 때다. 관객은 부들부들 떨기도 하고 심지어 눈을 가리기도 한다. 예측할 수 없는 모호함이 불안을 공포로 키우기 때문이다. 금융시장도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한다. 경제 현상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때 시장은 오히려 불안에 떤다. Fed는 이날 성명으로 시장의 공포를 덜어줬다. 최소한 4월 FOMC 때까진 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란 게 확실해졌고 빨라야 6월이란 기존 예상이 적중할 가능성이 커졌다. 공포가 사라지자 시장은 환호로 화답했다.

 조기 금리 인상으로 달러가 강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수그러들자 달러 가치는 주요 통화 대비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유로화 대비 -2.53%). 이날 회의에 앞서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미국의 금리 인상은 신흥시장 불안을 촉발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전문가는 세계 금융시장에 풀려 있는 자금 덕에 국내 증시가 적어도 2분기까지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이 금리 인상 시기를 당초 전망보다 늦출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주요 국가가 경쟁적으로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박석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 예상보다 온건한 Fed 정책 기조는 세계 유동성 장세를 자극하는 요인이 됐다”며 “달러화 자산에 쏠렸던 세계 유동성이 한국에 유입되면서 2분기 초반까지 코스피가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도 “당분간 금리 인상에 대한 불확실성이 사라졌다”며 “코스피가 이전 고점인 2100선 돌파 시도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연구원은 그러나 “금리 인상이 예견된 하반기에 코스피도 조정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김창규·염지현 기자 teente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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