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실신 시대' … 손 놓은 노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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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10명 중 한 명은 실업자로 조사됐다. 일자리가 없으니 빚더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청년도 계속 늘고 있다. ‘실업’과 ‘신용불량’의 앞 글자를 따 ‘청년 실신 시대’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18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11.1%로 외환위기 후유증에 시달리던 1999년 7월(11.5%) 이후 15년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체 실업률도 4.6%로 2010년 2월(4.9%) 이후 5년 만에 가장 높았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빚을 갚지 못해 개인 워크아웃(옛 신용불량자)을 신청한 29세 이하 청년은 6671명으로 전년보다 573명 늘었다. 학자금 대출을 받고 6개월 이상 돈을 갚지 못한 사람도 지난해(4월 기준) 4만635명이었다. 통계가 작성된 2007년(3785명) 이후 11배로 늘었다. 박근혜 정부는 ‘고용률 70%’라는 공약을 내걸었지만 고용 사정이 나아지긴커녕 갈수록 얼어붙는 악순환에 빠졌다.

 정년 연장과 통상임금 상승이란 덫에 걸린 기업은 신규 채용을 줄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철행 고용복지팀장은 “연간 40만 명에 달하는 대학 졸업자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세계적 경기 침체로 수익이 줄어든 대기업은 11만 명 정도밖에 뽑을 수 없다. 여기다 정년까지 연장되는 바람에 기업으로선 신입사원 뽑는 데 주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 정규직 보호에 급급한 노조도 회사 밖 청년실업 문제에 소극적이다. 강력한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해마다 임금을 올려 중소기업과의 격차를 벌리는 데 앞장섰다. 이로 인해 청년 취업준비생은 대기업·공기업 입사 시험 준비와 스펙 쌓기에 매달려 청년실업은 더 악화됐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조는 정규직 보호에 급급하다. 그러나 청년실업 해결에 나서지 않으면 결국 자기 자식에게 부메랑이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기업과 노조 사이에 낀 정부도 양쪽 눈치만 보느라 과감한 노동 개혁 조치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기업을 상대로 임금 인상을 압박해 오히려 청년실업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행조차 최근 실업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지난 12일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한 배경에도 실업지표 악화가 작용했다. 한은 서영경 부총재보는 “지난해 중장년층의 일자리가 늘긴 했지만 양적 성장이었고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는 질적 성장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청년실업 해소는 기업이나 노조에만 맡겨선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노조는 대기업 정규직 보호가 우선이고 기업은 정년 연장과 통상임금 상승으로 여력이 없어서다. 노동 개혁의 국제적 모범 사례로 꼽히는 네덜란드나 덴마크, 독일도 정부가 나서 노조와 기업 양쪽을 설득해 양보를 끌어냈다. 손종칠 한국외대 경제학과 교수는 “청년실업을 해결하지 못하면 기성세대 노후도 불안해진다.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정부가 전면에 나서 과감한 노동 개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민상 기자, 조현숙 기자 step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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