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메르켈 … 언론들 "일본 훈수 노련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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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일본 훈수

“ 나치 학살에도 독일이 존경받을 수 있는 위치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부끄러운 과거와 정면으로 마주했기 때문”
- 9일 아사히신문 강연서

“ 과거를 총괄(정리)하는 것이 (전쟁 가해국과 피해국 간) 화해를 위한 전제가 되는 법이다”
-9일 아베 총리와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서

“ 한국과 일본은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 군 위안부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0일 오카다 민주당 대표와 만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방일(訪日)에 대한 평가는 일본을 제외한 전 세계가 일치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의 과거사 왜곡과 군 위안부 문제, 원전과 남녀차별 등의 문제까지 지적하면서 노련하고 철저한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메르켈 총리는 방일 첫날인 9일 아사히(朝日)신문사 연설,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에 이어 아키히토(明仁) 일왕을 예방해 예정된 시간을 넘겨 대화했다. 이튿날인 10일에는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민주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일본) 군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는 게 좋다”고 일침을 가했다.

 10일(현지시간) 독일 주요 언론은 일본 방문에서 독일의 경험을 전하는 방식으로 과거사 직시와 반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메르켈 총리의 발언을 주요하게 취급하며 그가 노련하게 문제를 다뤘다고 전했다. 진보 언론 쥐트도이체차이퉁은 이날 ‘화해와 교훈’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메르켈 총리는 일본 정부를 비판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으면서도 영토와 과거사 문제를 지적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했을 것”이라며 “그는 일본에서 이 문제를 아주 노련하게 해결했다”고 평가했다. 빌트 등은 메르켈 총리가 10일 오카다 대표와의 만남에서 ‘성 노예’란 용어까지 써가면서 일본이 군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 것에도 큰 관심을 나타냈다.

 중국 역시 메르켈 총리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가 10일 온라인에서 메르켈의 발언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긴급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7%(5861표)가 “지지한다”고 밝혔다. 언론인이자 평론가인 마오카이윈(毛開云)은 “메르켈의 호된 역사 강의를 아베는 잘 알아들었느냐”며 “죄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는 것은 다시 잘못을 저지르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메르켈 총리의 행보에 발맞춰 미국에서도 일본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에니 팔레오마베가 전 미국 하원의원은 10일 아베 총리에게 “지금이 사과할 때”라고 충고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정계 은퇴를 하며 일본의 군 위안부 왜곡을 놓고 “과거를 부정하는 자는 과거를 반복한다”는 공식 의사록을 미국 하원에 남겼다. 팔레오마베가 전 의원은 이날 의회 전문지 ‘힐’에 올린 기고문에서 “올해는 2차 대전의 종전 70주년으로 일본군에 끌려가 성적으로 착취당했던 20만 명의 여성 중 대부분이 돌아가셨고, 남은 이들은 너무 오래 기다렸다. 이제는 일본이 사과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일본에서는 그러나 메르켈 총리의 방일 기간 중 ‘역사 훈수’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우익 성향의 산케이(産經) 신문은 11일 3면에 ‘메르켈 총리 나치와 일본 혼동했나’란 제목의 기사에서 메르켈이 전날(10일) 민주당 오카다 대표와의 회담에서 나치에 의한 범죄행위와 위안부 문제를 연계해 언급한 데 대해 “전쟁 전, 전쟁 중의 일본과 독재자인 히틀러가 이끈 나치 독일을 혼동한 것 같은데 이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도쿄=김현기,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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