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의 정치 Q] 손학규 지사의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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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뉴라이트 전국연합(공동의장 김진홍 목사) 결성대회. 보수들의 출정식에서 손 지사는 축사를 통해 '극좌파 과거'를 털어놓았다.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을 앞둔 1972년 가을 그는 한국전력에 응시했다. 목적은 단 하나, 폭력 사회주의 혁명을 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한전 노조위원장이 되어 총파업을 벌이면 도시 전체에 전기가 나가 깜깜해질 테고 그러면 무장 폭동이 가능하리라 믿었다"고 말했다.

한전 입사에 실패한 청년 손학규는 노동.빈민운동에 뛰어들었다. 구로공단에서 소설가 황석영과 함께 자취하면서 목공소에 다녔다. 청계천에선 활빈교회를 개척하던 김 목사를 만났다. 손 지사는 축사에서 "정말로 나는 도시 빈민의 폭력 혁명을 꿈꿨다"고 말했다. 그가 무장 혁명을 그리던 청계천을 대선 라이벌인 이명박 시장이 웰빙 공원으로 바꿔 놓았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손 지사는 혁명을 꿈꾸며 수배.도피.고문.투옥으로 70년대를 보냈다. 무엇이 그를 바꿔 놓았을까. 80년 4월 잠깐 민주화의 봄이 왔을 때 그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손 지사는 13일 기자에게 "세계라는 바깥에서 공부하면서 세 가지 충격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우선 한국의 경제성장이다. 중공(中共) 유학생들이 "한국은 우리의 모델"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의 김일성 우상화를 목격하기도 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유신 독재정권의 거짓말"이라며 믿지 않았던 대목이다. 북한은 달러를 퍼부어 외국 신문.잡지에 김일성 광고를 실었다. 마지막으로 심각한 영국병이었다. 사회주의에 가까운 분배정책 때문에 파업과 국민의 나태가 영국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좌파 혁명주의자였던 손 지사는 지금 외자유치 전도사다. 10일엔 공관에서 세계 최고의 광학업체 일본 호야의 사장과 폭탄주를 마셨다. 평택공장 준공을 축하한 것이다. 외자유치 외에 손 지사는 영어마을을 만들고 주한미군을 초청해 위로모임을 갖기도 했다. 수구좌파에게 손 지사는 어느 누구보다 생생한 역사의 교훈이다.

김진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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