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양쪽서 약대·약사고시 통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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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혜경 새삶 대표는 “남한 약대는 난공불락의 요새 같았다. 남한 약대생들이 북한보다 더 필사적으로 공부했다”고 말했다. [최승식 기자]

탈북민들의 국내 정착과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지난해 설립된 사단법인 새삶의 이혜경(50) 대표. 설연휴를 앞둔 지난 17일 제66회 약사 시험에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았다. 팔순 노모와 초등학생 두 딸을 부양하는 50대 탈북 여성으로서 ‘약사 고시’에 당당히 합격했다. 이 대표는 북한에서도 약사였다. 약사 시험에 합격한 탈북자는 더러 있었지만 이 대표처럼 남북한 양쪽에서 약대를 졸업하고 약사가 된 경우는 유일하다.

 북한에서 함흥약학대학을 졸업한 이 대표는 12년간 약제사로 일하다 2002년 탈북했다. 2007년부터는 법이 개정돼 불이익이 없어졌지만 당시만 해도 북한에서 취득한 약대 학력을 인정하지 않아 탈북 약사들에겐 약사 시험 응시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남한 사람들이 북한을 너무 모른다 싶었어요. 오기가 발동해 나이·학비도 따지지도 않고 2005년 삼육대 약대에 도전했지요.”

 그러나 남한의 약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북에서는 20대에 약대를 다녀 공부는 자신 있었는데 40대에 남한에서 4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가사·육아에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그야말로 전쟁이었어요.”

 그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교수실을 청소하는 근로장학생으로 뛰었다. 새벽에는 신문 배달, 밤에는 전단지 부착 아르바이트를 했다. 방학 때는 모텔 청소원과 방송 엑스트라 일도 했다.

 학과공부 내용은 남북한이 비슷했으나 공부하는 방법이 달라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다. 처음 도전한 2009년 약사시험 때는 답안지 표기법을 잘 몰라 답안지를 세 번 교체하다 시험이 끝났고, 두 번째, 세 번째도 낙방했다.

 봉사활동(사단법인 새삶)을 시작하면서 눈코 뜰새 없이 바빠졌다. 하루 3시간만 자면서 지난해 네 번째 약사 시험에 도전해 결국 합격했다. 이 대표는 북한에서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 병원 약제사로 일하면서 북한 제약업계의 붕괴 현장을 체험했다.

 “경제난이 닥치면서 병원의 약품 공급량이 하루아침에 10%로 급감했어요. 부족해진 항생제가 만병통치약으로 통했죠. 전력 사정이 나빠 수액(링거) 생산에 차질이 생겨 수액은 간부들이나 쓰는 고가약이었지요.”

 통일이 되면 평양에 약국을 개점할 의향이 있느냐고 묻자 “북한에도 시장화가 진전돼 약국이 이미 출현했다니 약국 내는 일보다는 통일 한국의 인적자산을 키우는, 더 의로운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전문직 탈북자를 과감하게 인정하고 포용하면 좋겠다. 북한의 실상을 잘 아는 그들이야말로 통일 시대에 크게 쓰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장세정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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