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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없는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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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양선희
논설위원

TV에서 ‘K팝스타’라는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을 종종 본다. 여기서 간혹 이런 심사평이 나온다. “노래는 잘하는데 감동이 없다.” 테크닉은 완벽한데 감동이 없는 노래를 듣는 건 지루하다. 그래도 노래는 3~4분이면 끝난다. 한데 민생과 직결된 대통령의 말이 수사학(修辭學)적으론 완벽한데 감동도 없고 현실인식에 의문을 품게 한다면, 그건 무섭다.

 “경제를 활성화해 세수를 늘려 국민에게 부담 주지 않고 복지를 실현하겠다.” “국민에게 부담 주지 않고 경제도 살리고 복지도 더 잘해 보자는 심오한 뜻을 외면한다면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증세 없는 복지’를 재확인한 말이다. 수사학적으론 ‘10점 만점에 10점’이다. 대통령의 착한 뜻이 담겨 있고, 결론이 이상적이고 행복하니 말이다. 한데 감동도 없고, 오히려 가슴이 답답해지는 건 왜일까. 대통령의 ‘비현실적 현실인식’과 말의 이면에 숨은 ‘정치적 기싸움’의 흔적이 빤히 보여서다.

 정부와 정치권은 복지 방향도 정해야 하지만 그에 앞서 비용 부담 대책을 내놔야 한다. 대통령의 대책은 경제활성화다. 한데 그게 쉬웠으면 지난 2년간 뭐 하느라 온 나라를 복지비용 논쟁 수렁에 빠뜨리고, 여전히 만점짜리 수사(修辭)만 되풀이하는 걸까. 게다가 수사를 걷어내고 말의 알맹이만 뽑아내면 경제활성화론은 법인세 인상 등 부자증세를 하지 않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법인세 인상 어젠다는 비박계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불을 지폈고, 정부와 전면전을 선포한 야당이 들고 나왔다. 이에 대통령은 법인세 성역화로 기싸움하는 형국이다.

 한데 우리나라 경제활성화의 걸림돌은 무엇일까. 시민단체가 아닌 국책연구원인 산업연구원(KIET)의 보고서를 한 번 보자. “가계와 기업 간 소득성장의 극심한 불균형이 내수 부진의 장기화로 이어졌고, 이 같은 불균형은 국제적으로도 이례적이며, 장기화될 경우 경제 전체에 다양한 문제를 낳을 것.”(『한국경제의 가계·기업 간 소득성장 불균형 문제』, 2013년)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경제성장기(1975~97)엔 가계와 기업소득이 연평균 8.1%와 8.2%로 동반 성장했지만 2000~2010년엔 2.4%와 16.4%로 격차가 확 벌어졌다. 가계소득 증가율은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의 절반 정도다. 국민소득 대부분을 기업이 차지했다는 얘기다. 돈은 기업에 있는데 세금 논의에서 기업은 성역이다.

 법인세 인상만이 정답이라는 건 아니다. 다만 국민을 대상으로 증세는 하지 않으면서 세수는 늘리는 ‘거위털 뽑기 신공’을 발휘하는 당국이 돈이 몰리는 기업에 대해선 이렇게 과묵해도 되는지 묻고 싶은 거다. 이명박 정부는 법인세를 낮췄다. 한국 법인세 최고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낮다. 대기업 실효세율은 더 낮다. 그런데도 기업이 이에 걸맞게 일자리를 늘렸거나 투자했거나 그 밖의 사회적 분배에 책임진 건 별로 못 봤다. 정치의 일 중엔 나라의 금력(金力)이 한 곳에 집중되지 않도록 견제하는 역할도 있는데, 이 기능은 지금 휴업 상태로 보인다.

 이 정도 복지 확대에 국가 재정이 휘청대는 게 꼭 대통령 탓은 아니다. 경제사정이 나빠졌고, 전 정부가 시행한 감세정책 역풍 영향도 있을 거다. 경제활성화는 일로매진해야 하나 미래는 불투명하다. 따라서 모든 실현 가능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 판국에 대통령이 수사학에 갇혀 견제·검토·논의까지 막아선 안 된다는 말이다.

 대통령 대선 공약인 ‘증세 없는 복지’ 원칙을 깨라는 말이냐고? 그동안 대통령은 스스로 많은 공약을 깼다. 대선 공약 대표선수였던 ‘경제민주화’는 없던 일이 됐고, ‘탕평인사’는 구경도 못해 봤다. 물론 경기침체기에 증세를 논하는 게 잘하는 건 아니다. 이젠 대통령이 선별적으로 작동하는 원칙주의와 수사학의 좁은 틀을 벗어나 위기를 넘는, 한 나라 리더다운 대국적 혜안을 보여 줘야 할 때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