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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회의 ‘아는 사람 알박기’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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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혁진
장혁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장혁진
사회부문 기자

“B기업의 일원이 되고 싶습니다.”

 뒤늦게 A기업 입사지원서라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이미 제출 버튼을 누르고 난 뒤다. 급하게 ‘자기소개서 복붙’(복사 붙여넣기)을 하다 보면 간혹 이런 일이 생긴다. 나 역시 그랬다. 원서 마감 후 실수를 자책하며 허탈함에 빠지곤 했다. “그래도 기적처럼 합격할 수 있진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기대가 일기도 했다.

 상상에 그칠 것 같았던 그 ‘기적’이 서울시의회에서 실제로 일어났다. “경기도의회에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이렇게 자기소개서를 쓴 지원자가 시의회 사무처 공무원으로 최종 합격한 것이다.

 사정은 이랬다. 시의회 사무처는 지난해 12월 시간제 임시직(8급) 공무원을 채용했다. 190명 이상이 원서를 냈고 서류심사와 심층면접을 거쳐 50명이 임용됐는데, 정원의 절반가량이 현직 의원과 소위 ‘연줄’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입법조사관으로 채용된 A씨는 현직 시의원의 딸로 확인됐다. 50대의 B씨도 이번 채용에서 입법행정지원요원으로 합격했다. B씨는 현직 시의원의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했던 경력이 있다. 반면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시의회 인턴을 거치며 업무 경험을 쌓은 이들은 면접에서 줄줄이 떨어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의원은 “공정성을 강조한다는 취지로 외부 기관인 서울시 인재개발원에 채용을 위탁했는데 정작 면접위원 선발은 의회 사무처의 몫이었다”고 말했다.

 시의회는 부랴부랴 “정당한 채용 과정을 거쳐 선발했다”는 해명을 내놨지만 석연찮은 점이 많다. 시의회는 “A씨가 채용공고에 지원자격으로 제시된 관련 학과(체육학과)를 졸업해 선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A씨가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맡는지에 대해선 답변을 피했다. “현직 시의원인 A씨 아버지는 (딸의 지원 사실을) 몰랐다”는 해명을 믿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책임 돌리기에 급급한 모습도 보기 좋지는 않다. 최웅식 서울시의회 운영위원장은 “본인이 청탁한 지원자가 불합격한 것에 불만을 품은 일부 의원이 사실 확인도 없이 외부에 알린 것”이라며 “1차 책임은 인재개발원에 있지 시의회의 잘못은 없다”고 했다.

 서울시의회는 지난해 전국 지방의회 중 최초로 ‘청년 기본조례안’을 발의했다. 10%에 달하는 청년 실업률 해소를 위해 5년마다 서울시가 청년정책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이번 특혜 채용 의혹은 그 조례안 발의에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 의구심을 품게 한다. 취업난 속에 젊은이들이 자신을 받아 줄 일터를 찾아 거리를 방황하고 있다. 공공 분야에 여전히 남아 있는 ‘인사 특혜 사각지대’를 보며 취업준비생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장혁진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