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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잃은 복지부, 땜질 처방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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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훈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정종훈
사회부문 기자

“당초 정부가 발표를 며칠만 미루자고 해서 받아들였습니다. 다들 철썩같이 믿었는데….” 지난 1년 반 동안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개선하는 작업에 힘을 쏟은 사공진(경제학부) 한양대 교수는 허탈하게 말했다. 그는 개선기획단(단장 이규식 연세대 명예교수) 소속 위원이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지난달 29일에 최종 개선안을 발표하고 손을 털게 돼 있었다. 하지만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그 하루 전 “올해 안으로 건강보험료 개선안을 만들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원점으로 되돌아가 버렸다.

 다른 위원들도 사공 위원과 비슷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일말의 기대는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뭔가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한 위원도 있었다. 하지만 문 장관의 연기 선언 이후 복지부 행보를 보면서 위원들은 가면 갈수록 상황이 이상하게 진행된다는 걸 알게 됐다.

 기자가 위원들에게 전화를 돌려 사정을 들어봤다. 문 장관의 발언으로 건보 개혁 후퇴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자 복지부가 후속 대책을 내놨는데 이게 위원들을 자극했다. 복지부는 기획단이 논의한 개선안은 거의 반영하지 않은 채 자동차에 부과하는 보험료를 줄이고 전·월세 공제액을 올려주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한 위원은 “이렇게 (복지부가) 뒤통수를 때리느냐”고 말했다.

 결국 1일 오후 이규식 개선기획단장이 정부를 비판하고 기획단을 해산하는 성명서를 마련했다. 상당수 위원도 정부 비판 성명서에 참여할 뜻을 보였다. 하지만 이날 일부 위원이 기획단 해산에 이견을 보이면서 이 단장 홀로 사퇴하는 걸로 마무리됐다. 이런 와중에 문 장관 측은 기획단 위원들에게 2일 함께 점심식사를 하며 개선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이들의 반응이 좋을 수 있을까.

 한 위원은 “단장이 사퇴한 마당에 무슨 점심을 하겠다는 거냐”고 성토했다. 김진현(간호학과) 서울대 교수는 “복지부가 정말 개선안을 추진할 생각이 있으면 굳이 점심 자리까지 마련할 필요도 없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위원은 “장관이 개선안을 추진하려고 노력했다는 쪽으로 언론에 잘 이야기해달라는 부탁까지 받았다”며 어이없어 했다.

 민간 전문가들이 포함된 기획단은 복지부 입장에선 건보료 개혁을 수행해 줄 동반자라 할 수 있다. 그런 기획단 위원들이 복지부에 완전히 등을 돌린 셈이다. 복지부는 앞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모아 개선책을 만들거나 아니면 복지부 홀로 추진해야 하는데 과연 이런 정책이 호응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땜질에서 땜질로 이어지고 있는 복지부의 정책으로 국민마저 이들처럼 등을 돌리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정종훈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