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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불출마 선언한 연봉 8000만원 농협 조합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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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위성욱 기자 중앙일보 부산총국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위성욱
사회부문 기자

그는 연봉 8000여만원을 받는 농협 조합장이다. 선거에서 현직 조합장이 프리미엄을 누리게 돼 있는 현행 제도상 오는 3월 11일 선거에 다시 나가면 재선할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그는 나가지 않겠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더 하면 힘들어 죽을 것 같았다. 이젠 지쳤다.”

 경남 창원시 동읍농협 김순재(51) 조합장. 1990년 경상대를 졸업하고 고향인 창원시 동읍 판신마을에서 농사를 지었다. 벼농사를 짓고 채소를 길렀다. 그러다 2010년 농협 조합장 선거에 나갔다. ‘농민들이 잘 키운 작물을 잘 팔아주는 농협을 만들어 보겠다’는 포부를 갖고서였다.

 선거 막판에 누군가 말했다. “3000만원 쓰면 확실히 된다. 10만~20만원짜리 봉투를 만들어 돌리면 150표 차로 이긴다.” 김 조합장은 “그럴 바에야 여기서 포기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선거를 치러 여덟 표 차로 당선됐다.

 조합장이 되고 나름대로 개혁의 길을 걸었다. 감사에서 비리가 적발된 간부 두 명을 내보냈다. 조합원들이 개당 3000~3500원을 주고 사던 모판을 조합이 직접 만들어 2000원에 공급했다. 금융사업에 치중하고 때론 비리가 일어나는 여느 농협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을 퍼뜨리고자 뜻을 같이하는 전국 조합장들을 모아 2013년 ‘정명회’를 발족했다. 김 조합장이 총무를 맡았다. 참여자는 전국 1100여 조합장 중 35명뿐이었다. 그래도 힘을 얻었다며 농협중앙회에 여러 가지 의견을 개진했다. “모판 만들기가 정말 유용하다. 중앙회 차원에서 하자”라든가 “이사·감사를 제대로 교육해야 조합장 견제도 되고 조합이 바로 선다”는 등이었다. 하지만 공허한 울림만 돌아왔다. 김 조합장은 “받아봐야 별무신통인 이사·감사 교육이 이어졌다”고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정명회 회원들이 하나둘 모임을 떠났다. 김 조합장은 “이런저런 압력에 고심한 기색이 역력했다”고 말했다. 조합장도 지쳐갔다고 했다. 그래도 농협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은 놓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택했다. 이번 선거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더 많이 당선되게 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더 큰 힘을 모으자는 거였다.

 이를 위해 자신은 출마를 포기했다. 대신 현재 곳곳에서 열리는 지역 농협 개혁 토론회에서 “제대로 뽑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생각이 같은 후보자들이 출마한 곳에 달려가 도울 예정이다. 그는 말했다. “지역 농협 개혁에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게 농협중앙회입니다. 중앙회가 지역 조합장들 입김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으면 더 빨리 지역 농협이 바로 설 텐데….”

위성욱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