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식구」, 어디로 갔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요즘 신문 사회면을 펼치면 차마 다시 옮겨놓기도 싫은 자녀살해사건들이 연거푸 일어나고 있다. 말이 「동반자살」이지, 그것은 엄연히 살인이며, 그중에서도 끔찍한 존·비속살해인 것이다.
수원에서는 30대 초반의 젊은 여인이 남편 몰래 진 빚으로 가정불화가 심해지자 어린 3자녀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을 기도했다. 대구에서는 남편이 가출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20대 주부가 3남매와 함께 극약을 마시고 동반자살을 기도, 역시 자녀들만 희생되었다. 풍기에서는 남편과의 불화로 3남매와 함께 동반자살을 기도한 30대여인이 아들형제와 함께 절명하고 장녀만 증대에 빠졌다.
『세상에 이럴 수가…』하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이밖에도 요즘 들어 꼬리를 무는 직계 존·비속 살해사건이나 동반자살사건은 이미 커다란 사회문제가 돼왔다. 그 동기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부부간의 갈등이나 생활형편의 악화, 신변비관 또는 정신질환에 의한 발작 등이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자녀들에 대한 이런 충동적 살인행위는 자녀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자신의 일부 혹은 자기의 소유물로 생각하는데서 기인한다. 우리민족은 예부터 가족을 「우리식구」로, 자녀를 「내자식」, 「내새끼」, 「내 피붙이」 등으로 부르는 것이 가장 애정 어린 호칭으로 즐겨 써왔다.
이것은 좋게 보면 끈끈한 혈연의식, 공동운명체라는 단합의식의 표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치면 내 자식은 내것이니 내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식으로 비약하기 쉽다.
내가 없으면 내자식들이 살기가 어려워지고 남에게서 천대나 학대를 받을 것이니, 살아서 고생하느니 차라리 함께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까지 이른다. 그래서 철부지 생명을 앗아버리는 엄청난 폭력이 자행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 없으면 너희들도 못산다』는 식의 생각은 부모들의 무책임한 자기기만이다.
생명은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갈 수 있다. 역경과 고난을 이기며 사는 동안 갖가지 삶의 지혜를 터득하여 더욱 굳세고 튼튼한 인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삶의 곤궁이 극에 달하면 죽고 싶은 충동도 날것이며 또 실제로 자살을 결행할 수도 있다. 사회윤리나 도덕률로 설득할 수 없는 절실한 개인적 고충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아직은 자신의 선택을 주장할 수 없는 어린이를 「동반자살」이라는 독단으로 살해한다는 것은 인륜까지 얘기할 것도 없는 동물적인 직정의 광적 행위다.
동반자살을 기도하는 부모들을 보면 대개가 20, 30대 가장·주부들이다. 애정보다는 재력이나 배경을 우선적인 조건으로 평가하고 결혼한 경우가 많은 세대들이다.
그러한 조건들이 흔들리거나 없어질 때 가정의 바탕마저 쉽사리 무너져 버린다. 부부사이의 애정부재가 자녀들에 대한 분풀이로 발전하고 이것이 극에 이를 때 『너 죽고 나죽자』는 발작적 결과를 초래한다. 합심 협력하여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가는 건전한 부부상, 서로 인격을 존경하는 가족관의 인식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엉뚱한 동기로 자녀들과의 동반자살을 결행하는데는 최근 빈번히 발생하는 여타 살인사건과 마찬가지로 역시 인명경시풍조를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법적으로는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것으로 돼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임신중절이라는 일종의 살인행위를 감기약 먹는 정도로 쉽게 행하고 있다. 생명에 대한 존엄성은 고사하고 필요 없으면 언제나 없애버릴 수 있는 대단찮은 물건정도의 태아에 대한 생명관이 결국은 자녀에게까지 연장되고 임신중절만큼이나 쉽게 자녀들의 「생명중절」을 행하는 것은 아닐까.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이런 기괴한 살인풍조는 국민소득 2천달러를 넘는 고도산업사회로의 발전단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금전만능이나 인명경시의 과도기적 현상이라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런 때일수록 모든 부모와 사회, 정부가 각자의 입장에서 인식을 새로이 하고 범국민적인 정신계몽에 나서야할 때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