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의 바른번역 시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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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번역을 경시하고 표절이 만연된」우리나라 동양학계 풍토에 통렬한 비판이 가해져 주목을 받고 있다. 고려대 김용옥교수(동양철학)는 최근 「우리는 동양학(East Asian Studies)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라는 글(『세계의 문학』봄호)을 통해 정체된 현 학계의 문제점을 파헤치면서 동양학 발전을 위해 선결돼야 할 「방법론」의 하나로서 번역의 중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다음은 김교수의 발표내용-.
번역은 더이상 「창조적 대가리가 없는 2, 3류 학자나 하는짓」「일본것이나 베끼는짓」「돈에 궁색한 대학원생들이나 하는 짓」이 아니다. 이제 학계에 고질화돼 있는 번역 경시의 통념을 바로잡을 때다.
번역이란 사어를 활어로, 문어를 구어로, 고대를 현대로, 과거를 현재로 바꾸는 작업이다.한문문화가 번역되지 않는 한 과거는 현재로 이행되지 않은채 매몰돼버리고 만다.
우리나라 개화기의 역군들이 번역의 역군들로 등장하지 못한 사실은 바로 근세민족사의 최대의 비극으로 보인다.
중국의 경우, 해박한 중국고전의 실력을 토대로 서양의 고전을 수없이 번역해낸 엄복을 비롯, 양계초 강유위 호적 풍우난 전목 양수명 같은 지적거성들이 기억되며, 일본의 예를 봐도 길전송음이 길러낸 명치유신의 주역들이며 복택유길 중강조민 제교철차 고남순차낭같은 이들은 20세기 세계동양학발전에 찬란한 공헌을 남겼다.
그러나 당대 우리나라의 지성인들, 예를 들면 서재필·김옥균·유길준등등 인물들은 이들과 필적할 어떤 업적을 남겼는가. 우리나라의 20세기는 학문의 황무지, 자생적 축적이 거의 없는 텅빈 시간의 참고에 불과하다.
우리 민족이 장구한 역사를 통해 중국과 접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나라 고전이 20세기중엽을 지나서야 우리말화되기 시작했다는 이 엄연한 사실을 새삼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것은 한문문화권의 변방민족에게 공통된 운명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그중 가장 늦게 자기문자를 창출한 편에 속한다.
몽고·거란은 우리 보다 수세기가 빠르며, 일본 문자인 「가나」(가명)가 쓰여지기 시작한것은 평안시대 초기이므로 세종의 한글창제보다 무려 6백년이 앞선다.
또한 「가나」생성 자체가 한문을 자기말화하려는 노력에 기인한 것이다. 「성」을 「성」이라 읽지않고 「별」이라 읽었다.
이렇게 애초부터 한문을 완전히 자기말로 푸는 작업에서 그들의 문자는 태어났고 그 문자는 일찍부터 넓게 보급됐다. 우리의 한문번역의 역사가 20∼30년밖에 안된 반면 일본은 1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반성속에서 우리학계를 회고할때 우리 동양학계야말로 「번역의시대」에 놓여있다는 것을 주장하지 않을수 없다. 번역을 토대로 하지 않은 모든 지적활동은 공중누각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 아직 『성경』번역에 견줄만한 『논어』번역이 있는가. 동·서고전을 통틀어 번역다운 번역으로 우리말속에 존재하는것은 『성경』단 하나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학계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번역 경시의 고질은 왜 타당화되고 있는지 이해할수 없다. 한 학자의 학문성취를 평가하는데 번역은 부차적인것이 아니면 아예 평가에서 제외된다. 교수승급 논문에서도 번역은 제외되며 문교부에서 매년 써내라는것도 번역이 아닌「창조적 논문」으로 기억된다.
물론 석사·박사학위논문으로 번역을 인정하는 전통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학술재단의 보조에서도 번역은 제외되거나 지원금액이 반감된다.
이것은 우리학계의 무지와 후진성을 드러내는 수치스런 악습이며 전통이다.
이러한 악습이 해방후 30여년간 우리학계를 지배해 오는 동안 만연된 질병이 「표절」이란것이다.
서양학자들의 책을 인용할 때는 자랑스럽게 출전을 밝히면서 일본학자들의 책을 몽땅 베끼다시피하면서도 그 출처를 내비치지도 않았던 많은 기성학자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어렵다.
일본학계에선 한 학자를 평가하는뎨 번역을 제1의 업적으로 평가한다. 그것은 번역이 학문활동중에서 가장 긴시간과 가장 수준높은 스칼러십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관한 논문」을 쓰는 일은 철저한 지식없이도 가능하다. 해석이 안되는 부분은 슬쩍 넘어갈수도 있고 동초서초해 적당히 일관된 논리의 구색만 갖추면 훌륭한 논문이 될수도 있다.
그러나 번역의 경우는 「완전한」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노출」을 두려워한 한국학자들은 여태까지 「창조적논문」이라는 표절행각에만 분주했던것이다. 해방후 30년간의한국학계는 넓은 의미로 「표절의 시대」라 불러도 무방할것이다.
일본사람에게서 교육받고 일본학풍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그다지도 번역을 경시하는데는 우리 역사에 내재해있는 뿌리깊은 원인으로부터 해답을 찾아낼수있다.
그것은 「언어전통의 빈약」과 「조선조지성사의 고질적인 엘리티즘」이다. 일본의 경우 훈독이란것이 있어서 이질적인 한문문화와 일어문화가 부드럽게 융화될수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음독만이 존재, 한문과 한글은 물과 기름같은것이었다.
각대학의 동양학 부문의 석사·박사학위논문은 가급적 번역위주로 전환시켜줄 것을 제안한다. 일본은 물론 구미제국의 대학에서도 지극히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왕충에 관한 논문을 쓰는 것보다 『논형』의 몇장이라도 정확하게 주를 달고 해설을 붙여 번역하는 것이 이 시점에서는 왕충연구가로서의 정도일 것이며 학위논문으로서도 값진 것이다.
번역을 어느 특정기관에서 단기코스를 밟은 사람들이 하는 짓이라는 통념에서 우리 학계가 하루속히 벗어나지 않는 한 우리나라의 동양학은 영원히 답보상태를 면치못할 것이다.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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