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북제재에 정부 "지지" 대신 "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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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북 제재 방침에 대한 외교부의 지지 논평이 지난해와 달라졌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최고위급 회담을 못할 것 없다”고 말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인사회에서 “통일 준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뒤의 변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일(현지시간) 미 재무부가 북한 노동당과 정찰총국 등 3개 기관, 이와 관련된 개인 10명에게 경제제재를 가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의회에 보낸 서한에서 “북한의 파괴적이며 위협적인 사이버 공격을 포함해 계속되는 도발적인 행동과 정책이 국가 안보와 대외정책 및 미국 경제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영화 ‘인터뷰’를 제작한 소니픽처스를 해킹한 데 대한 보복 조치다.

 그러자 한국 외교부는 노광일 대변인 명의로 지난 3일 논평을 냈다. 노 대변인은 “미 정부의 행정명령이 금번 소니사 해킹 건을 포함한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 등에 대한 적절한 대응조치인 것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선 미국의 대북 제재 조치에 대해 외교부가 “지지한다”는 표현 대신 “평가한다”는 표현을 쓴 건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소니 해킹이 북한 소행이라고 결론 내린 직후인 지난해 12월 20일 외교부는 대변인 논평에서 “정부는 우리 금융기관에 대한 사이버 공격과 이번 소니사에 대한 사이버 공격이 유사한 수법으로 밝혀진 점에 유의하면서, 북한의 이러한 행위를 규탄한다”고 했었다. 두 논평을 비교하면 3일의 “평가한다”란 입장은 수위가 낮아진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고위 당국자는 “남북관계를 고려한 입장 표명”이라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미 정부가 북한 소행이란 결론을 내리기까지 피해상황 공유 등 한·미 간 여러 협의가 있었기에 북한이 한 것이라는 결론 자체에는 우리도 쉽게 동의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새로운 제재에 대해선 남북관계 등을 생각해 신중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폭 지지’ 같은 표현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한 발짝 물러서 ‘평가’라는 단어를 쓴 것”이라고 했다. 특히 청와대도 동의했다고 한다. 이 당국자는 “논평이 나오기 전 외교부·통일부 간에 의견 교환이 있었고 최종적으로 청와대에서 조율하고 승인했다”고 덧붙였다.

 국립외교원 미주연구부장을 맡고 있는 김현욱 교수는 “북한은 올해 핵 동결 카드를 이용해 미국·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꾀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로선 한·미 공조를 우선할 것인지, 남북대화에 무게를 둘 것인지 결단의 순간이 온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번처럼 고민스러운 상황이 이어질 텐데 한국이 미 정부의 대북 강경 기조만 따라가기보다는 먼저 남북관계를 치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서울=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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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북 정찰총국 등 3개 기관, 개인 10명 경제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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