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구랍'은 '지난해 12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6면

해가 바뀌면 언론매체에서 지난해 12월을 ‘구랍’이라 부르는 경우가 있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구랍 31일 서울 보신각 일대는 새해맞이 타종식을 지켜보려는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정동진 등 동해안에는 구랍 31일 밤부터 해돋이를 보려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한선화는 구랍 30일 2014 MBC 연기대상과 31일 SBS 연기대상에서 연이어 신인상을 수상했다” 등이 이러한 표현이다. 그러나 자주 쓰이지 않는 용어인 데다 어려운 한자어이다 보니 생소하게 다가오는 측면이 있다.

 ‘구랍(舊臘)’의 ‘구(舊)’는 ‘옛’을 뜻하고, ‘랍(臘)’은 원래 납일(臘日:조상이나 종묘·사직에 제사 지내던 날)에 행하는 제사를 의미한다. ‘구랍’은 차츰 뜻이 변해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달인 ‘섣달’을 가리키게 됐다.

즉 ‘구랍’은 음력으로 ‘지난해 12월’을 뜻한다. 과거에는 음력을 사용했으므로 당연히 음력에만 적용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음력 1월 1일인 설날(올해는 양력 2월 19일)이 돼야 비로소 지나간 음력 한 달을 ‘구랍’이라 부를 수 있다.

 위에서처럼 양력을 기준으로 지난해 12월을 ‘구랍’이라 하는 것은 잘못이다. 음력과는 날짜 자체가 맞지 않는다.

 “구랍 12월 31일 영화를 개봉했다” “구랍 12월 23일부터 올해 1월 3일까지 행사를 벌였다” “구랍 12월 30일 노사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는 식의 표현도 나온다. 이 경우 ‘구랍’을 ‘지난해 12월’도 아니고 단순히 ‘지난해’로 알고 있는 듯하다.

 ‘구랍’은 음력의 개념이므로 양력에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구랍’이 ‘지난해 12월’보다 짧게 표기할 수 있어 유용한 면이 있으나 음력과 양력은 날짜가 서로 다르므로 단순히 바꿔 쓸 수가 없다. ‘구랍’은 대부분 사람에게 의미가 선뜻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굳이 이 단어를 써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구랍’을 ‘지난해 12월’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배상복 기자

▶ [우리말 바루기] 더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