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혜택, 도쿄 100년 목조건물을 지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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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일본 도쿄 야스다(安田) 대저택에서 내셔널 트러스트 직원들이 건물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겨울비가 몰아치는 날씨였지만 목조건물 천장에선 물 한 방울 새지 않았다. 창문 유리를 비롯해 내부 장식재는 1919년 완공 당시 그대로다.
야스다 대저택은 일본식 정원과 목조 건물이 조화를 이룬다. [일본 내셔널 트러스트]

백년 된 목조건물은 거센 겨울비를 견뎌내고 있었다. 지난 달 26일 찾은 일본 도쿄도(東京都) 분쿄구(文京<533A>) 야스다(安田) 대저택(대지면적 1486㎡)에서 먼저 눈길을 끈 건 단풍나무로 멋을 낸 일본식 정원이었다. 2층 목조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소파가 보였다. 복도를 지나서 만난 서양식 주방엔 90년 전부터 사용하던 그릇과 가스 오븐이 보존돼 있었다. 동·서양 문화를 동시에 품고 있는 야스다 대저택은 도쿄도에 등록된 문화유산이다.

 1919년 건축된 야스다 대저택은 다이쇼(大正) 시대 상인이던 쿠스오 야스다가 23년 인수했다. 건물과 대지의 현재 시세는 12억엔(110억원)에 이른다. 야스다 가문에서 소유하다 96년 문화재 보존에 주력하는 공익재단법인 ‘일본 내셔널 트러스트’에 기증했다. 내셔널 트러스트는 7년 동안 건물을 손봤다.

일본 내셔널 트러스트 미호 사토 매니저는 “건물 보수에 4년, 정원을 재정비하는데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며 “골격은 95년 전부터 사용하던 그대로”라고 설명했다. 2007년 일반에 개방된 이곳은 입장료 500엔(4580원)을 내면 관람이 가능하다.

 땅값이 비싼 도쿄 도심에 백 년 된 목조건물이 남아 있는 건 양도소득세 면세 제도 덕분이다. 일본에선 59년부터 주요 문화재를 공공단체에 기부하면 양도소득세를 면제해주거나 경감해주고 있다. 교토에 있는 서양식 건물인 코마이 대저택(1918년 건설)도 면세 제도를 활용해 내셔널 트러스트의 자산이 됐다.

 야스다 대저택 보수공사는 도쿄도의 지원금과 민간 기부금으로 충당했다. 민간 기업인 JR(일본철도)과 관광회사인 JTB가 주요 후원자다. 연간 4000엔(3만6600만원)의 회비를 내는 개인 회원은 2000명 수준. 기업 후원이 주를 이루고 시민들은 문화재 지킴이로 자원봉사에 나선다. 정부가 제도를 만들고 기업이 후원하고 시민들이 나서는 문화재 보호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것이다. 에츠코 니게시 매니저는 “근현대 문화재 보존이 결국 관광자원으로 이어진다는 판단에 따라 관광 관련 기업들의 후원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의 경우 국민신탁법이 2012년부터 시행 중이지만 세금 감면 등에선 걸음마 단계다. ‘조세관련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조세를 감면할 수 있다’라고만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 보호단체의 한 관계자는 “세금 감면이 경우에 따라 달라 기증 의사를 묻는 안내 전화가 걸려와도 제대로 답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문화재 보존과 관련한 인센티브를 과감하게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재단법인 아름지기 장영석 사무국장은 “세수 확대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가 예산을 통해 근현대 문화재를 사들이던 시대는 지나갔다”며 “세제혜택 등 관련 인센티브를 확대해 민간 단체가 문화재 보존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내셔널 트러스트 김금호 국장은 “세제혜택 지원 대상을 관련법이 지정하지 않고 있는 시민단체로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쿄=글·사진 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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