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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수류탄 폭발음·총성 … 공포에 질린 시드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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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6일(현지시간) 새벽 중무장한 경찰이 인질들이 잡혀 있는 호주 시드니 마틴플레이스 초콜릿 카페에 진입했다. 구출작전 후 인질로 잡혀 있던 시민들이 카페에서 탈출하고 있다. [시드니 AP=뉴시스·텔레그래프 홈페이지]

시드니 중심가에서 발생한 인질극 현장에 사건 발생 16시간만인 16일 새벽 2시경(현지시각) 호주 경찰이 전격 진압 작전을 펼치며 극적으로 상황이 종료됐다. 마틴플레이스의 린트 초콜릿 카페는 인질극 이틀째로 접어든 16일 새벽 불이 꺼진 상태였으나 ‘펑’하는 소리가 수차례 들리며 경찰의 진압 작전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인질 5~6명이 추가로 탈출했다. 카페 안에서 뛰쳐 나온 인질들은 들 것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되기도 했다. 인질들이 나온 직후 중무장한 경찰은 수류탄을 던지고 총을 발사하며 카페 안으로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 측도 부상을 입었으며 경찰 한 명은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진압작전은 호주 현지언론이 경찰 소식통을 인용해 인질극을 벌인 무장괴한이 이란 출신 만 하론 모니스라고 보도한 직후 펼쳐졌다.

범인인 이란 출신 만 하론 모니스가 지난 2009년 시드니에서 반전 시위를 벌이는 모습. [시드니 AP=뉴시스·텔레그래프 홈페이지]

 만 하론 모니스는 이슬람 주류와도 교류하지 않은 소수파인 ‘라피디(rafidi)’라고 9NEWS 등 호주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그와 같은 한 마리의 ‘외로운 늑대(lone wolf·자생적 테러리스트)’가 인구 475만명의 호주 최대 도시 시드니 전체를 패닉 상태로 만든 것이다. 15일 시드니의 금융중심가인 마틴플레이스에서 발생한 무장 인질극은 테러가 이미 시민들의 일상이 벌어지는 골목으로 파고들었음을 의미한다. 흰색 셔츠에 검은 모자를 쓰고 수염을 기른 테러범은 샷건으로 무장하고 출근길 시민들이 목을 축이는 초콜릿 카페에 들이닥쳤다. 마틴플레이스는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인 키아누 리브스가 몸을 뒤로 젖혀 총알을 피하는 유명한 장면을 촬영한 광장으로 미국 총영사관 등 외국 공관들이 밀집해 평소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이번 테러는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를 추종하는 자생 테러리스트의 소행으로 보인다. 인질범은 경찰에 IS 깃발과 토니 애벗 총리와의 대화를 요구했다고 호주 최대일간지 시드니모닝헤럴드(SMH) 인터넷판이보도했다. 시드니 무슬림 커뮤니티의 한 지도자는 “테러진압 경찰이 이날 4~5차례 전화를 걸어 급히 IS 깃발을 찾을 수 있는지 여부를 물어왔다”고 말했다.

인질극 발생 8시간 후인 15일 카페에서 탈출한 여성 종업원. [시드니 AP=뉴시스·텔레그래프 홈페이지]

 IS 깃발은 인질범이 여성 인질 2명에게 창 밖에서 보이도록 들고 있게 한 검은색 깃발과는 다르다.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다’는 무슬림의 신앙고백(샤하다)이 적힌 건 같지만 문양이 조금 다르다. 이 무슬림 지도자는 인질범이 IS와 반목하는 알카에다 조직인 ‘자브하트-알-누스라’의 일원일 가능성을 언급했다. IS 추종자가 IS 깃발을 소지하지 않고 경찰에 요구하는 게 이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받은 IS 깃발을 태워 반감을 표시하려 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IS 추종자건 그 반대편이건 시민들의 공포는 다를 게 없다. 중동지역에서만 벌어지는 것인 줄 알았던 테러가 생활 속으로 파고 들었기 때문이다. 한 교민은 “최근 몇 달 사이 이슬람 무장세력들이 호주에서 테러를 벌일 가능성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막상 현실이 되고 보니 더욱 공포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민은 “최근 시내 중심가에 경찰 경계가 더 삼엄해졌고, 몇 명이 체포됐다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말했다.

 호주에서는 87년 멜버른 교외에서 총기 난사사건으로 7명이 살해되고, 96년 포트 아서에서도 총기난사로 35명이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었다. 하지만 이 사건들은 정신이상자 등의 소행이어서 재발 가능성이 적지만 이번 사건은 이라크에서 진행되고 있는 IS 격퇴전에 호주가 지원을 계속하는 한 발생 가능성이 지속되는 상황이어서 우려가 크다. 실제로 IS 대변인 아부 무하마드 알아드나니가 호주의 무슬림들에게 “호주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외로운 늑대’ 공격을 실행하라”는 지령을 지난 9월 내렸다고 NBC가 테러감시단체 SITE를 인용해 15일 보도하기도 했다. 게다가 지난달 말 호주 서부 퍼스의 이슬람 사원에 돼지 머리와 내장을 던지는 등 이슬람 증오사건도 발생하고 있어 외로운 늑대들을 더욱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SMH도 “일상의 공포 조성이 이번 테러의 목적”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테러범이 카페 방문과 같은 일상 생활을 형언할 수 없는 공포의 순간으로 만들었다”며 “이번 인질극이 시드니나 여타 도시를 겨냥한 계획된 유사 공격의 시작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인질로 잡혔다 빠져 나온 교포 여대생 배모씨는 괴한이 침입했을 때 스마트폰 메신저를 통해 곧바로 상황을 외부에 알렸다. 이 메시지가 지인들 사이에 퍼지면서 언론과 현지 공관에서도 배씨가 인질로 잡힌 사실을 알게 됐다.

신경진·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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