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로 경력 안 끊기게 … 풀타임·시간제 전환 쉬워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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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앞으로 2년 남짓 뒤인 2017년 한국의 인구구조엔 지각 변동이 온다. 전체 인구는 2030년을 정점으로 감소한다. 이와 달리 일을 할 수 있는 15~64세 생산가능인구는 2016년 3700만 명을 찍은 뒤 2017년부터 줄어든다. 전체 인구는 앞으로도 15년 동안 계속 늘어나는데 일할 나이 인구는 2년 뒤부터 줄어든다는 얘기다.

일할 나이의 인구가 부양해야 할 몫이 늘어나는 만큼 소비는 갈수록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는 경제 활력 저하로 이어져 저성장을 고착화할 수 있다.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생산가능인구를 늘리자면 출산율을 높이거나 이민을 받아 근로자를 수혈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 여건은 아직 대규모 이민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태다. 출산율은 단기간에 끌어올리기 어렵다. 여성 인력 활용이 생산가능인구 감소의 충격을 완화시켜줄 당장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건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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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동안 인테리어 회사에 다녔던 김은선(35·서울 서초동)씨는 올해 초 회사를 그만뒀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 때문이다. 퇴근 시간이 늦었던 김씨는 늦게까지 아이를 맡겨야 했지만 이 어린이집에선 늦어도 오후 6시까지 아이를 데려가라고 요구했다. 김씨는 평소에도 자신의 아이만 늦게까지 남아 있어 눈치가 보이고 마음이 불편했다고 한다. 그는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없어 결국 일을 포기하게 됐다.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곳만 있다면 언제든지 다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엔 이처럼 출산·육아 때문에 직장을 다니다 그만둔 경력단절여성(경단녀)이 올 4월 기준 213만9000명에 이른다. 경단녀가 많은 탓에 지난해 한국의 여성 고용률은 53.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4개국 중 25위였다. 아이슬란드(79%), 스위스(74.4%), 노르웨이(73.5%) 등에 크게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일본(62.5%)이나 회원국 평균(57.5%)과도 격차가 있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전무는 “국내 여성 인력은 교육수준이 높기 때문에 경력단절만 줄여준다면 2017년 이후 생산가능인구 감소를 보완해줄 새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를 감안해 육아휴직을 활성화하고 각종 보육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경단녀들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경기도 분당에 사는 이모(32)씨는 1년 반 전에 다니던 금융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 첫 아이를 낳았을 땐 친정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회사에 다녔다. 복귀한 지 1년 안에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 다시 출산휴가를 쓰려니 회사에서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게다가 어머니 건강이 나빠져 두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다. 결국 회사를 포기하고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그는 “어학연수까지 다녀와서 금융회사에 입사했는데 3년 반 다니고 그만두니 그동안 공부한 게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혜림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여성의 경제활동을 분석해 보면 결혼 시점인 25~35세에 고용률이 뚝 떨어지고 40대 이후에 다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M자 구조를 보인다”며 “여성 고용률이 M자 형태인 나라는 OECD 국가 중 한국과 일본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력단절은 학력이 높을수록 심해진다. 고학력 여성들은 30세를 기점으로 고용률이 떨어진 후 다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L자 형태를 띤다. 이 선임연구원은 “대졸 이상의 여성은 근무환경이나 임금에 대한 기대수준이 높다”며 “하지만 경력단절을 경험한 후엔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가 한정돼 아예 구직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여성의 경력단절은 고용률뿐 아니라 임금에도 영향을 미친다. 남성의 임금은 40~44세에 월평균 300만원 정도로 정점에 도달한다. 이에 비해 여성의 임금 곡선은 30~34세에 200만원으로 가장 높고, 30대 후반 이후로는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여성이 임신·출산·육아로 경제활동을 포기하면서 연간 15조원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경력단절 이후의 임금 손실액만 연간 9조원에 이른다. 재취업하지 못한 경력단절 여성의 숫자와 이들이 이전 직장에서 받았던 임금, 경력단절 기간을 따진 값이다. 또 이전 직장보다 낮은 임금으로 생긴 손실액, 재취업 교육 훈련 비용 등도 사회적 비용에 포함된다.

조선주 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출산·양육과 관련된 책임을 여성에게만 맡기고 있다. 빠르게 늘어나는 고학력 여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사회적 손실 비용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염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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