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감자꽃을 피워요] 上. 왜 '씨감자 프로그램'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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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1일 오전 백두고원 끝자락인 양강도 대홍단군. 씨감자(감자종자) 생산 사업장을 둘러보기 위해 이곳에 온 남한의 월드비전 관계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끝없이 펼쳐진 감자밭 때문이었다. 마침 하얀 감자꽃이 활짝 피어 장관을 이뤘다. 전재현 월드비전 후원개발 본부장은 "북한 당국이 왜 '감자 바다'란 표현을 쓰는지 실감난다"고 했다.

대홍단의 감자 재배면적은 2000ha. 이 가운데 400ha는 소비용이 아닌 씨감자 증식용 생산밭(채종포)이다. 월드비전과 북한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가 협력 사업을 통해 조직 배양과 온실 수경재배를 거친 바이러스 없는 잔알 씨감자가 심어져 있다.

김은각 월드비전 자문역은 "감자 생산량은 씨감자의 바이러스 감염률이 낮을수록 늘어난다"며 "북한 전역에 우량 씨감자를 심기 위해선 노지(露地) 재배를 통한 종자 증식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온실 수경재배는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노지에서 잘만 증식하면 수경재배보다 종자 생산량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홍단은 천혜의 씨감자 증식지다. 해발 600~2000m에 걸쳐 있어 바이러스를 옮기는 병해충이 적기 때문이다. 동시에 대홍단은 북한이 내건 감자 혁명의 거대 실험장이기도 하다. 감자 증산으로 식량난을 풀려는 북한 당국의 꿈은 이곳 채종포의 '순산'에 달려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98년 이래 세 번이나 대홍단을 찾은 것은 이와 맞물려 있다고 한다.

중앙일보와 월드비전의 '사랑의 감자꽃을 피워요' 캠페인은 바로 북한에 우량 씨감자 생산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씨감자 증식 단계에서 망실(방충망을 씌운 간이시설), 농약.비료, 방제 기술을 지원해 북한 스스로 식량난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자는 것이다. 1회성 구호사업과는 차원이 다른 셈이다. 북한의 씨감자 생산체계 구축 작업은 기초가 다져진 상태다. 대홍단 등 5개 씨감자 사업장에서 연간 1200만 알 이상의 바이러스 없는 씨감자를 생산하고 있다. 권태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2000년 이래 월드비전의 경제적.기술적 지원으로 북한의 1단계 씨감자 생산체계는 완비됐다"며 "앞으로 노지 재배를 통해 우량 씨감자를 얼마나 양산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우량 씨감자 증식 체계가 뿌리를 내리면 북한의 식량 사정은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현재 북한의 한해 감자 생산량은 약 200만t(20만ha 재배 면적에 ha당 생산량 10t)이다. 그러나 씨감자 증식 체계가 순항하고 해마다 5만~10만t의 비료 지원만 이뤄지면 2008년께는 생산량이 400만~600만t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용범 서울시립대 교수는 "이는 알곡 기준으로 하면 100만~150만t이지만 북한의 식량 사정상 90% 이상이 식용으로 쓰인다고 보면 식량난 해결에 엄청난 기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분이 많은 감자는 4kg를 알곡 1kg으로 치는 것이 국제 관례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북한의 2004년도 식량 부족분은 89만t(필요 최소량 기준)이다.

박종삼 월드비전 회장은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난은 일시적 지원을 통해 풀릴 문제가 아니다"며 "식량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씨감자 생산사업와 같이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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