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척추 똑같은 모형 만들어 예행연습 … '수술 오차 제로시대' 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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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윌스기념병원 허동화 원장이 3D 프린터로 만든 맞춤형 척추 모형을 들고 환자에게 수술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신동연 객원기자

수술을 앞둔 환자는 불안하다. 아픈 곳은 정확히 어디인지, 수술은 성공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다. 몸의 기둥인 척추를 다룰 땐 특히 그렇다. 3D 프린터가 실물 크기로 재현한 3차원 척추 모형을 모의수술에 활용하면 고난도 수술의 성공률이 향상된다. 척추전문병원으로는 국내 최초로 풍선확장술을 시술했던 윌스기념병원이 3D 프린터를 도입해 척추 치료의 신기원을 열고 있다. 수원윌스기념병원 허동화 원장은 “3D 프린터를 이용해 척추수술 성공률 100%를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부 박모(56·경기도 수원시 권선구)씨는 3개월 전부터 허리가 뻐근해지더니 다리 저림이 심해졌다. 척추뼈가 미끄러지면서 신경을 누르는 척추전방전위증 진단을 받은 박씨. 수술을 받을 정도로 악화됐지만 겁이 나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 허동화 원장은 3D 프린터로 박씨의 척추 모형을 실물 크기로 제작한 후 수술 계획을 상세히 설명했다. 자신의 척추를 직접 보며 설명을 들으니 이해도 쉽고, 척추 모형으로 수차례 수술 시뮬레이션을 한다는 말에 믿음도 갔다. 박씨는 고난도 수술인 전방 경유 척추유합술로 허리 건강을 되찾았다.

3D 프린터, 수술 안전성·정확성 향상

허리와 엉덩이 통증, 다리 저림 등 증상은 비슷해도 환자에게 맞는 치료법은 다르다. 나이, 생활습관에 따라 척추의 형태 변형에 차이가 있고, 허리질환의 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3D 프린터는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촬영(MRI)보다 더욱 사실적이고 정확하게 인체 내부를 그려내는 ‘환자 맞춤형’ 장비다. 실제 올해 초, 미국에서는 선천성 심장 결함을 지닌 영아의 수술에 3D 프린터로 만든 인공심장을 이용했다. 수술은 대성공이었다. 윌스기념병원이 국내 척추전문병원으로는 처음으로 3D 프린터를 도입하게 된 배경이다. 윌스기념병원에 설치된 3D 프린터는 CT나 MRI 등 2차원 화면으로 확인이 어려웠던 뼈의 굵기나 굴곡을 정밀하게 재현한다. 만들어진 척추 모형의 정밀도는 0.178㎜ 수준으로, 1~0.2㎜가량인 CT의 정밀도의 2배 이상이다.

 척추 모형을 만들 때 사용하는 ‘3D 프린터 설계도’는 수술 전 미리 찍어놓은 CT와 MRI 화면을 이용해 제작하므로 추가 검사가 필요치 않다. 뼈는 물론 신경·혈관까지 원하는 만큼 모형 제작에 반영할 수 있다. 의료진은 2차원 화면과 3차원 입체구조로 두 번 이상 환자 상태를 관찰한다. 진단·치료의 정확도는 그만큼 높아졌다.

 허동화 원장은 “모든 척추질환의 진단·치료에 3D 프린터가 이용된다”며 “환자와 보호자가 자신의 척추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수술에 대한 이해도나 만족도가 크게 높다”고 말했다.

고난도 수술 성공률 100%에 도전

3D 프린터는 특히 고난도 수술에서 빛을 발한다. 대표적인 척추 치료 수술법이 전방(복부) 경유 척추유합술이다. 척추유합술은 척추 사이의 추간판(디스크)을 제거한 뒤 빈 공간에 인공 디스크나 인공 뼈를 넣고 척추를 잇는 수술법이다. 등 부위를 가르는 후방 경유식과 달리 전방 경유식은 복부에 척추를 감싸는 근육·인대가 없어 신체 손상이 최소화된다. 환자 예후도 좋다.

 그러나 동맥과 신장 등 주요 신체 장기를 피해 척추에 접근해야 하므로 수술을 실제 집도하는 곳은 몇몇 대학병원을 비롯해 손에 꼽을 정도다. 척추모양의 변형에 맞춰 인공 디스크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윌스기념병원은 지난 10년간 2000례 이상 이 수술을 집도했다. 수술 성공률과 환자 만족도 모두 95% 이상이다. 허동화 원장은 “3D 프린터를 도입한 후 혈관이나 신경 손상 가능성이 거의 0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실제 3D 프린터를 도입한 뒤 전방 경유 척추유합술 수술시간은 네 시간에서 세 시간으로 한 시간쯤 줄었다. 사전에 인공 디스크 크기를 정하고, 혈관 위치나 척추 변형 정도를 파악할 수 있어 절개 범위도 5㎝ 미만이다. 허동화 원장은 “수술 뒤 합병증을 걱정하거나, 긴 수술시간이 부담이었던 고령자나 고혈압 환자도 3D 프린터를 도입하면서 수술을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윌스기념병원은 환자 만족과 성공적인 수술을 위해 3D 모형을 무료로 제작해 활용한다. 안양 윌스기념병원 최경철 원장은 “환자의 만족과 맞춤형 의료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앞으로는 실제 보형물 제작에도 3D 프린터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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