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글로벌 디플레 공포 … 정교한 정책대응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전 세계적으로 경기침체가 장기화하고 디플레이션에 우려가 확산되면서 각국이 동시다발적으로 경기부양에 나서고 있다. 일본이 이미 추가 양적완화 조치를 밝힌 데 이어 중국 인민은행이 지난 21일 2년4개월 만에 전격적으로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여기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그간의 부양책이 효과를 보지 못할 경우 양적완화 조치의 확대를 포함한 추가적인 인플레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강조했다. 바야흐로 세계 각국이 디플레 방어에 총력전을 펼치는 양상이다.

 미국을 제외한 주요 경제권이 모두 양적완화와 금리 인하 등을 통한 통화 공급 확대에 나섬에 따라 자칫하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와 같은 통화전쟁이 벌어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기부양을 위한 인위적인 통화 공급 확대가 경쟁적인 화폐가치 하락(평가절하)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단 통화전쟁이 벌어지면 우리나라가 이에 대응할 수단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추가 금리인하나 양적완화 조치를 시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금리를 일정 수준 이하로 낮추거나 통화 공급을 지나치게 늘리면 환율 하락 효과는 있겠지만, 동시에 외화 유출의 위험도 커지게 된다. 대외경제환경이 요동칠수록 더욱 정교하게 거시경제정책을 운용해야 하는 이유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주 주요 연구기관장과의 간담회에서 “시중에 돈은 많이 풀렸으나 돈이 용처를 찾지 못하는 ‘돈맥경화’ 현상이 생기고 있다”면서 “금융·노동·교육 분야의 개혁을 통해 돈이 돌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돈맥경화’를 막기 위해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는 말은 길게 보면 맞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작금의 경기침체와 디플레 우려를 불식시키기에는 다소 한가한 소리로 들린다. 지금은 급변하는 대내외 경제여건 속에서 한국 경제가 어떻게 활로를 찾을 것인지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내놓을 때다. 단기 부양책과 중장기적인 구조 개혁 사이의 연관성도 높여야 한다. 경제평론가처럼 당위론을 설파할 게 아니라 실제로 결과를 낼 수 있는 정교한 정책 구상을 밝히라는 이야기다.